김명범 행정학박사 제주공공문제연구소장 논설위원

2019년 대한민국은 분열과 대립이 지배하는 혼돈의 사회였다. 두 달 반밖에 남지 않은 연말에 이렇게 회고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올해 1월 말 한국사회갈등연구센터가 발표한 '2018년 한국인의 공공 갈등 의식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90%가 우리 사회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국민 절반 이상(52.4%)은 문재인 정부에서 사회적 갈등이 증가했고, 정부의 갈등 해소 노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국민(47.1%)도 절반에 가까웠다. 

제주도 이런 전국적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표적으로 제2공항 건설 사업은 2015년 성산으로 입지가 결정된 이후 도민 사회를 두 동강 냈다. 갈등이 임계점을 넘어서는 동안 문재인 정부의 갈등 제어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국토부는 원희룡 도정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원희룡 도정은 국책 사업이라며 국토부에 공을 떠넘겼다. 집권 여당 국회의원들 역시 무소신에, 무기력한 정치력의 한계만을 드러냈다. 국토부의 의도대로 계획된 정책 결정 절차는 진행됐고, 제2공항 건설의 마지막 관문인 기본 계획 입법 고시는 이제 시간문제다. 

최근 행동 경제학에서 주목받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론이 있다. 두 명의 참가자가 등장해 돈을 나누는 게임이다. 1번 참여자가 돈의 분배를 제안하면, 2번 참여자는 거절과 수용의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2번 참여자가 거절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2번 참여자가 수용하면 1번 참여자의 제안대로 돈은 분배된다. 만약에 1번 참여자가 9대1 혹은 8대2 같은 불공정한 제안을 할 경우 2번 참여자의 선택은 자신의 이익을 기꺼이 포기하면서까지 불공정에 맞서 거절을 선택한다. 

제2공항을 두고 벌어지는 최후통첩 게임이 낳을 결과는 자명하다. 갈등의 본질은 찬성과 반대를 떠나 절차적 불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도 당국은 정책 결정의 결함을 보완한다는 차원에서 공론화 청원에 대해 출구 전략으로 검토할 가치가 충분했다.

도의회가 공론장을 만들겠다는 의지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늦었지만, 그래서 더 험난해 보인다. 도민의 뜻을 묻고, 더 큰 갈등을 막고자 하는 최후의 안전장치를 찬반 프레임으로 가둬버리면 결코 치킨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제주도 행정 시장 직선제는 지난 9월 말 총리실 소속 제주지원위가 반대하면서 좌초 위기에 봉착했다. 10년 넘은 도민 사회의 고민과 노력이 헛수고가 될 판이다. 

정부의 불수용 이유는 두 가지다. 제주특별자치도 설립 취지에 맞지 않고, 도지사와 시장 간 사무 배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조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제주특별법에 있지만 사문화 된 러닝메이트 조항을 활용하면 된다는 발상은 궤변에 가깝다. 제주의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이다. 

제주특별자치분권모델 완성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다.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는 제주 여건과 특성에 부합하는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겠다고 명시하고 있다. 학원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등 떠밀어 보내는 부모의 결정이 진정한 아이의 자기 결정권은 아니지 않은가.

정부는 2019년을 자치 분권의 제도화 원년으로 설정했다. 전국의 지자체에게 연방제 수준의 자치와 분권을 약속하면서, 70% 이상의 제주 도민이 찬성하는 행정 시장 직선제에 대해 반대하는 문재인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 스스로 제주 도민과 한 약속을 파기한 것인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대통령 취임사의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증명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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