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기상청장

추수의 계절, 가을이 왔다. 한 해 동안 땀 흘려 일한 노동의 열매를 맺고 결실을 수확하는 시기다. 농사의 전 주기 내내 날씨가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어디 있겠냐만, 가을은 특히 농사의 막바지 계절이니만큼 날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때다. 

이러한 관심을 반영이라도 하듯 가을 날씨에 관련된 재밌는 속담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가을 안개는 쌀 안개'라는 속담이다. 가을에 안개가 끼는 날이 잦으면 그해는 풍년이 든다는 뜻인데, 과연 이 속담에 기상학적인 근거가 있을까. 안개의 발생 원리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공기의 냉각 과정에 의해 발생하는 '냉각성 안개'와 증발과정에 의해 발생하는 '증발성 안개'다. 우리나라에서 가을에 주로 발생하는 안개는 '냉각성 안개' 중에서도 '복사안개'라고 불리는 안개이다.

'복사안개'는 바람이 없고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큰 맑은 날 새벽에 주로 형성된다.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의 경우에는 구름이 지표 근처의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기온이 크게 떨어지기 어렵다. 그러나 구름 없이 맑은 날에는 열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야간에 지표 근처의 기온이 크게 떨어지고 일교차가 커지게 된다. 

이때 차가운 지표면 근처의 공기가 이슬점 이하로 냉각돼 수증기가 응결하면서 안개가 형성되는 것이다. 즉, 복사안개가 형성됐다는 건 구름없이 맑은 날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속담은 가을의 맑은 햇살이 벼가 익는 것을 도와 그해 풍년이 들게 됨을 나타내는 것이며 충분히 과학적 근거가 있는 속담인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경우 가을에 안개 발생빈도가 상당히 낮은 편이며, 복사안개보다는 해안가와 산간 지역의 지형적 영향으로 인해 연안안개와 활승안개 등 다른 여러 가지 메커니즘에 의한 안개 형성이 더욱 빈번하다. 따라서 가을 안개가 복사안개임을 가정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 위 속담은 제주도에서는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안개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교통안전'에 대한 부분이다. 도로에서 안개가 발생하면 운전자들의 가시거리가 방해받아 교통사고 발생률이 높아진다. 안개 취약도로 및 교량에 대해 사전에 파악해 해당 구간을 지날 때는 유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기상청에서는 짙은 안개가 예상될 때 날씨누리 홈페이지(www.weather.go.kr)의 안개정보서비스를 통해 안개 예상지역, 시간 및 가시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기상현상 그 자체에는 선이나 악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안개의 경우처럼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방식에 따라 도움이 되기도 하고 위험이 되기도 한다. 이에 기상현상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가지고 이를 이해하며 나아가 활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올해 가을 안개는 풍년을 예고하는 쌀 안개가 되길 바라며 기상청 안개정보서비스를 활용과 함께 안개로부터 안전한 가을철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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