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의회 조훈배 의원

제주에서는 시외로 잠시만 빠져 나와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목가적 분위기가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푸른 초지는 심미적인 경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물 자원을 함양하고 토양침식 방지와 대기를 정화하는 등 다양한 환경적 기능을 한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제주의 초지 면적은 약 1만6000㏊로 우리나라 전체 초지면적(3만3300㏊)의 절반 수준을 차지한다. 

대한민국에서 1%를 차지한다는 제주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제주의 초지도 개발 열풍을 피해 가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 도의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행정사무조사특위 대상인 대규모 개발사업장 22곳을 살펴보면, 전체 개발사업 부지의 25%(923만1000㎡)가 애초 지목이 초지였다. 

문제는 이 초지가 별다른 심사 없이 쉽게 전용되었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우선 초지에 대한 법률적 규제가 약하다는 것이다.

농지의 경우에는 헌법과 농지법에 근거하여 농업인만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원칙과 규제가 있는 반면, 초지는 누구나 소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물론 초지법으로 작물 재배행위조차 엄격하게 제한하는 등 타 용도로의 전용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지만, 관광시설 용지 등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해서는 전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관광시설을 비롯한 대규모 투자시설들이 공공성이나 공익성을 갖고 있다는 인식도 한몫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면밀한 평가가 필요하다.  

초지가 갖고 있는 다양한 환경적 기능과 가치에 대한 평가 및 이해의 부족도 초지 잠식을 촉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제주 초지의 공익적 경제 가치가 4000억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현재에 와서 생태적·공익적 가치를 따져 본다면 그 가치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전용과정에 있어서 초지의 가치가 평가되거나 검토되어 본 적이 없었다. 

대규모 사업부지에 대한 환경영향 평가의 다양한 항목과 내용 중에도 초지에 대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그 가치를 몰랐기 때문이다. 

적어도 초지가 농지나 산지(임야)와 비교해서 산업적이나 생태적으로 그 가치에 손색이 없는 만큼, 현재의 개발절차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초지가 대규모 개발사업을 위한 비축 토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치를 인정받고 보존될 수 있다면 우리 도민의 삶의 질 향상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초지의 보전과 가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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