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장 / 논설위원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글에서 사랑이야말로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꼽았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너무 광범위하고 애매모호하다. 필자는 사회가 온전히 굴러가기 위해서는 용서와 감사 그리고 봉사가 꼭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다.

필자는 젊었을 때 사람들이 원칙을 어기는 것을 참지 못하곤 했다. 특히 약속 시간을 어기는 것은 남의 귀중한 시간을 훔치는 것과 같이 여겨져 5분 이상 늦는 사람과는 상대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 보니 필자도 본의 아니게 늦을 때가 있었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차가 막히는 바람에 약속 시간보다 무려 10분이나 늦었다.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도 그래서 늦는구나 하고 용서를 할 수가 있었다. '과부만이 과부의 설움을 안다'라는 말도 있듯이 결국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것만큼만 이해할 수 있으며, 이해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크기라고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집중력이 떨어져 생각하지도 않은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젊었을 때는 그런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더니 요즘은 필자 자신이 자주 자질구레한 실수를 하게 된다. 엉뚱한 곳에 부딪히는가 하면 물건을 떨어뜨리곤 한다. 책을 오래 읽으면 시야가 흐려지거나 상(像)이 깨어지기도 한다. 청력이 줄어드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피곤했을 경우 더 심해진다.

지난 19일 오후 2시에는 잔치 피로연에 갔다가 주차할 곳이 없어 한참 주변을 돌고 있었다. 마침 한 면이 비어있어 주차하려고 했더니 엉터리로 주차한 차량 때문에 회전반경이 나오지 않아 한참 동안 전·후진을 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처음 운전을 시작할 때는 아카데미 극장의 배려로 그 지하실에 주차하곤 했었다. 때로 영화 간판을 그리느라고 주차장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 10㎝ 간격으로 주차하곤 해 주차 실력을 기르는데 많은 도움이 됐고, 주차라면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기에 실망감이 컸다.

며칠 뒤 밖에서 점심을 먹는데 아내가 누군가 접촉사고를 내고 그냥 가버렸다고해서 살펴보니 앞범퍼에 긁힌 자국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양이 다른 사람이 내 차를 긁은 것이 아니라 내가 긁은 모양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제 지하주차장에서 무리하게 주차하려다 옆 차를 긁었음이 틀림없었다. 회전반경이 되지 않으니 운전석 창의 손잡이가 기둥에 걸려 거기에 신경을 쓰느라 충격이나 소리가 들리지 않았거나 워낙 서서히 진입했으므로 마찰음이 없었을 것이다. 제주국제관악제 행사 관계로 캐나다와 미국을 8일동안 여행하고 밤늦게 귀국한 이튿날이어서 시차적응이 안돼 판단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접촉사고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차를 확인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확인만 했다면 차의 번호를 적어 놓든가, 차창에 내 전화번호를 남겼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접촉사고가 일어났다면 조수석 문이 긁혔을 터인데 그곳은 워낙 운전자가 잘 확인하지 않는 곳이라 차가 긁혔다는 것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호텔로 전화해 접촉사고를 신고한 분이 있는지 알아보았으나 없었다. 경찰서와 지구대에 물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주차장에 CCTV가 있었다면 바로 알 수 있었는데 아쉽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차가 긁혀있는데 누가 했는지 모른다면 얼마나 화가 날까. 무척 미안한 일이다. 사과하고 용서를 빌고 싶으나 그렇지 못하고 있다. 토요일 오후 2시 라마다호텔 지하 주차장의 십자 교차로의 남쪽에 주차했던 회색 차종으로 오른쪽 앞문에 접촉사고 흔적이 있는 차주나, 이런 차를 수리한 분이 있으시다면 연락주세요.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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