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문철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 / 논설위원

요즘 항간의 정치사회적 화두는 '개혁'이다. 정권 출범 때부터 들고 나오던 '적폐청산'은 이젠 그만하면 됐다는 판단에서인지, 국민들의 피로감을 의식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통령은 며칠 전 새해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에서 '공정을 위한 개혁'을 들고 나섰다. 

필자는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착안할 점들로 사족을 달아보려 한다. 첫째, 반드시 자신에 대한 성찰을 먼저 앞세워야 한다. 과거는 기억으로 존재하고 현재는 현상으로 존재하며 미래는 기대로 존재한다. 그렇다. 지나온 나의 삶은 엄연한 사실로 기억과 기록 속에 존재하고, 현재는 현상, 곧 수많은 사실과 상황들로 지금 나를 애워싸고 있다. 이러한 시간의 흔적들은 때로는 부메랑으로 내게 박수나 채찍을 갖다 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일련의 기억, 기록, 사실과 상황들을 앞에 놓고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깊이 고뇌해 봐야만 한다. 둘째, 인식의 문제다. 즉 개혁의 주체인 나는 항상 옳고, 객체인 상대는 항상 그르다는 인식의 오류,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개혁은 반드시 실패한다. 이는 이른바'동굴의 우상'에 잡혀있는 꼴이다.  셋째, 개혁은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같이 소리없이 진행할 일이다. 요란하게 펼치는 것은 분위기만 음산할 뿐 실효적이지 않다. 

웨스터민스터 대성당의 지하묘지에 잠들어 있는 어느 주교의 묘비를 주목한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젊은 시절에 꿈 많던 그는 자신이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그건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알게 된다. 여기서 일단 겸비해진 그는 이번엔 자기 나라를 변화시키려 했지만 그것 역시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어느새 황혼에 이르러서는 마지막으로 가족을 변화시켜 보려 했지만 그도 손쉬운 일은 아니었다. 죽음을 앞에 둔 지금 그가 절실히 깨달은 것은 먼저 자신부터 변화시켰더라면 하는 후회였다. 마침내 꿈의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지난 주에 주요 정당 원내대표들의 국회연설이 있었다. 저마다 국정 전반에 대한 문제들을 적시하며 신랄하게 주장과 비판을 설파하는데, 오감이 아주 짜릿해옴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들의 연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유체이탈(遺體離脫)화법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자기에게 해야할 얘기를 모두가 다 남 얘기하듯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정을 책임지는 공당의 인식과 자세가 하나같이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자신과 당의 손익계산만 염두에 두고 있지, 국가대의를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아 씁쓸했다. 

널리 알려진 세계제2차대전 때의 얘기다. 항복을 거부하고 버티는 일본에 대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 투하를 명해 마침내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이 전쟁을 종식시킨 제33대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나의 과거에 대해 총체적인 책임을 진다. 나는 앞으로 나의 상황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다. 공은 여기서 멈춘다"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연설로 '공은 여기서 멈춘다'로 번역되는 'The buck stops here!'의 요지다. 집권기간 내내 그의 집무실 책상머리에는 이 문장이 붙여져 있었다 한다. 그렇다. '책임'이란 의미로 쓰인 이 패(buck)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않고 내게서 멈춘다는 이 책임있는 리더십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부른다.

그는 이어서 '결단을 내려야할 상황이 되면 반드시 결단을 내리겠다. 하나님께서 내게 늘 올바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결단을 내리는 능력과 잘못된 결단을 내렸을 때 그것을 고치는 능력은 주셨다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의 판단착오나 과오에 대한 인정과 그에 따른 겸허한 시정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언젠 안 그랬으랴만 요즘 우리 정치권은 딱해도 너무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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