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주 작.

고현주 사진가 4·3유품 사진집 「기억의 목소리」 발간
오는 9일부터 한달간 4·3평화재단 전시실서 전시도

푸른 녹이 슨 부러진 숟가락, 낡은 고무신, 할머니의 물빛 저고리, 관에서 처음 본 어머니의 은반지, 아버지의 젊은 시절 초상화,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빗, 사연 많은 어머니의 재봉틀. 70년 이상 바스러져가는 4·3유가족의 사물들이다. 혼자 시간의 더께를 입고 버려지거나 날카롭게 흔적만 남기고 떠도는 4·3의 역사적 현장을 증언하는 물건들이다.

제주출신 고현주 사진작가는 2년 가까운 시간동안 4·3유가족 20여명의 유품과 제주4·3평화재단 수장고의 일부 소장품을 촬영했다. 제주4·3의 참혹하고 비극적인 참상을 알리기보다는 개인의 일상이 깨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이고 절망인지를 사물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다.

작가는 이번 작업의 배경에 대해 “개인의 서사가 기록으로, 기록이 역사로, 역사가 문화가 되어야 시대의 상징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다”며 “왜 중심의 이야기보다 주변의 이야기가, 집단보다 개인의 서사에 주목해야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고현주 작가의 4·3유품 사진작업은 「기억의 목소리」라는 제목의 사진집으로 이달 초 출간됐다. 책속 시와 인터뷰 글은 유가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허은실 시인이 함께 했다. 책은 제주도의 지원을 받아 ㈔제주국제화센터에서 발간했으며 한글 뿐만 아니라 영문 번역도 실려 있어 제주4·3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이번 유품사진들은 오는 9일부터 제주4·3평화재단 2층 전시실에서 다음달 9일까지 한달간 전시된다. 전시개막이 열리는 9일 오후 3시 작가와의 토크도 예정돼 있다.

한편 고현주 작가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음악교사로 일하다 대학원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하고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2002년 ‘재건축아파트’, 2006년 ‘기관의 경관’, 2014년 ‘중산간重山艮 I’, 2016년 ‘중산간重山艮Ⅱ’ 등 도내·외에서 개인전과 초대전을 가진 바 있다. 저서로 4년여에 걸쳐 소년원의 아이들과 함께한 사진수업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꿈꾸는 카메라」가 있다. 문의=064-723-4349(4·3평화재단), 064-727-7790(㈔제주국제화센터). 김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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