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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담론] 입시의 기억오승은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논설위원
오승은
입력 2019-11-10 (일) 18:07:53 | 승인 2019-11-10 (일) 19:24:47 | 최종수정 2019-11-10 (일) 19:24:47

수학능력시험이 어느새 이번 주로 다가왔다. 지금은 다양한 전형방법으로 대학에 진학하기에 수능이 예전만큼의 중요성이나 강도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지만, 여전히 전 국가적 행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간 대입 전형은 수없이 변경됐기에 이 글을 읽는 독자도 각각 다른 시험에 관한 기억을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필자에게도 대학입학시험에 관한 기억이 있다. 필자가 대학에 입학하던 때는 이른바 '선지원' 제도에 의한 대입학력고사를 보던 때이기에 자신의 점수를 알지 못한 채로 희망하는 학교와 학과에 먼저 지원을 하고, 지원한 학교에 가서 학력고사시험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는 수험생들 때문에 대학가 주변의 숙박시설은 초만원이 되곤 했다.

시험을 치르던 날은 12월의 중순이었고 공교롭게도 그날은 오빠의 생일이었다. 아무리 집안의 기둥인 장남의 생일이었을지라도 집안에 수험생이 있으니 어머니는 미역국을 끓여 주지 않았다. 하필 생일이 시험일과 겹쳐서 미역국도 못 얻어먹은 장남은,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시험보러 가는 동생을 데려다주라는 미션까지 하달받았다. 

직전 해의 학력고사날은 눈이 많이 내려서 수험생의 대규모 지각사태가 벌어졌던 터라, 아예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험장소인 학교 건물까지 잘 데려다주라는 미션이 떨어진 것이다.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새벽같이 기상 했던 오빠는 초등학교 때 이후 처음으로 동생을 학교까지 데려다주고는, 한 만화방에서 종일 만화책을 뒤적이다가 시험이 끝날 즈음 다시 동생을 데리러 왔다.

시험장소는 40명 정도가 여유 있게 들어가는 강의실이었다. 당시만 해도 행정학과는 여학생이 매우 드문 학과였기에 지원자 또한 적었다. 강의실에 여학생이라고는 필자 혼자였다. 내 자리는 강의실 뒤쪽 구석 근처 자리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뒷줄에 앉은 시커먼 남학생 하나가 다가왔다. 본인이 삼수생인데 올해는 꼭 대학에 합격해야 하니 잘 부탁(?)한다고 했다. 나는 "보여주는 기술은 없으니 알아서 재주껏 보시던가"라고 답했다(지금 생각해도 시험 날 어떻게 그런 배짱이 생겼었는지 모를 일이다).

1교시 시험이 시작됐고 시험감독으로  학과 교수님 한 분과 대학원생 조교 한 분이 들어왔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의고사 때와는 달리 OMR카드에 빨간색 펜으로 미리 체크를 하지 못하게 했고, 덕분에 수성펜으로 기표하다 틀렸다면서 카드를 새로 달라는 학생이 속출했다. 조교가 답안카드를 바꾸어주면서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카드가 몇 장 안 남았으니 틀리지 말고 잘 쓰라고 타박을 주었다.

1교시가 십 분쯤 남았을 때, 아뿔싸, 이번에는 내가 틀리고 말았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눈앞이 아득했다. 저 아저씨의 타박과 구박을 받으며 카드 한 장을 애걸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쿨하게 이깟 한 문제 포기하고 말 것인가. 아니지, 이 한 문제 때문에 떨어지면 그 얼마나 억울한 일일 것인가. 용기를 내서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카드 한 장만 주실 수 있을까요?" 그랬더니 무서웠던 조교가 군말 없이 다가와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시간이 아직 충분하니 당황하지 말고 찬찬히 옮겨 적으라는 상냥한 말과 함께. 

최근 온 국민의 이목을 끌었던 사태의 수습을 위해 정부는 여러 가지 대입 개편안을 내놓았다. 사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공정하고, 단순하며 자신의 능력에 따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늦은 시간 책상 앞에서 씨름하는 학생 저마다의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는 제도를 만들고, 그것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작동하게 하라는 것이 국민적 요망이다. 모쪼록 수험생들이 건강하게 시험을 마칠 수 있도록 기원한다.


오승은  webmaster@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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