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복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조선조 인조 때 예조판서였던 김상헌은 병자호란을 당하자 적에게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하면서 청나라와 싸우자는 주장을 펼치다가 결국 중국 심양으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당시 심회를 직설적으로 이렇게 토해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이처럼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삶의 터전을 떠나 타지에 흩어져 살 수밖에 없게 됨을 뜻하는 말이 있으니 곧 '디아스포라(Diaspora)'이다. 이 말은 본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산(離散), 곧 흩어짐의 뜻을 지닌다. 

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주민이 자발적으로 혹은 강제적으로 고향을 떠나게 돼 멀리 떨어진 지역에 거주하게 됨이란 어느 시대 어느 곳을 막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노래들이란 종종 특정 민족을 대표할 정도로 유명하기까지 하다. 

예를 들면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Nabucco)'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나 아일랜드 민요 '오 데니보이', 미국민요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와 같은 부류의 노래들이 그렇다. 

한국인의 정서상 이런 부류의 노래를 꼽는다면 단연코 아리랑이 대표적이다. 세마치장단의 경기민요 본조 아리랑을 필두로 강원도 지역에선 정선아리랑과 강원도아리랑이 유명하고,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전라도의 진도아리랑 등 그 지역성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감흥의 끼와 여세가 대단하다. 

그런데 어째서 제주도에는 이런 아리랑 류의 민요가 집단으로 구전되지 않는 것일까. 그 자세한 이유를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는 한 본토와는 다른 탐라국 자체의 독자적 문화권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정도의 추정을 해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역설적으로 제주 섬에는 아리랑 류의 곡조가 존재하지 않음이 특징이기도 한 셈이다. 

필자는 얼마 전 이용호의 시문집 '청용만고'의 전문을 번역해 출간했다. 구한말 제주에 유배를 왔던 김윤식 등과 함께 5년여 동안 생활하면서 느낀 소회를 담은 한시 문집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책 서문에 보면 제주도민요 '이여도사나'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그건 이 섬사람들이 부르는 '방애질소리'란 겁니다. 제주 섬은 그 옛날 몽골 오랑캐 놈들이 지배하던 원나라 관할이었기에 해마다 목축할 땅을 바쳐야만 했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나무속을 후벼 파서 만든 통나무배로 큰 바다를 가로지르며 건너다가 고기밥이 되기 십상이곤 했습죠. 그리해 살아서 돌아오는 자가 열에 서넛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니 집을 나설 때면 가족들은 '이여도로 떠나보낸다'는 전송의 노래를 부르곤 했답니다.'

이른바 '너와 떨어져 있는 섬(離汝島)'이란 뜻을 지닌 이여도란 곳이 지금 어디인지는 상세히 알 수 없으나 토박이 사람들이 그 소리를 거듭 전하게 되면서 그게 바로 풍속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제주민요 '이여도사나'야말로 아리랑을 대신할 진정한 노래로서 제주인의 디아스포라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한편 오는 22일과 23일, 이틀 동안 제주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립무용단의 기획공연이 마련되는데, 그 타이틀이 '이여도사나'이다. 제주의 독특한 신화 속 주인공인 삼승할망과 제주인의 이상향인 이여도가 작품 속에 녹아나면서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인 제주해녀가 재해석돼 등장함이 이채롭다. 

제주여성의 숭고한 삶에 대한 의지를 인문학적 상상력과 신화 속 신비성의 세계로 안내할 이번 '이여도사나' 공연에 거는 기대는 각별하다. 제주만의 독특한 브랜드 가치를 지닌 제주문화의 우수한 콘텐츠가 과연 어떻게 무대화돼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되는가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