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제주국제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논설위원

제주도는 어디서든 자동차로 짧은 시간 안에 중산간에 진입할 수 있다. 가을의 끝에서 중산간의 억새와 단풍을 만나며 제주 자연이 주는 멋진 색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행복 연구자들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아야 후대와 지역에 유용한 자산을 물려주기 수월하므로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고 한다.

마케팅이 전공인 필자는 주말이면 관련된 다양한 사례를 찾아 나서게 된다. 마케팅이 사례를 연구하는 학문인 까닭이다. 최근에는 지역의 브랜드 구축 사례를 경험하고, 4차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술을 접목시키거나 체험에 집중한 매장을 둘러 볼 기회를 가졌다.

이 중 광주에서 경험한 '광주 100년 이야기'라는 시티투어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이 투어는 관광지를 순환하는 일반적인 투어와 달리 지난달까지 토요일에는 광주의 근대예술, 일요일은 광주 5·18을 주제로 한 스토리텔링형으로 진행됐다. 

버스 한 대에 전국에서 온 투어객이 모인 것에 우선 놀랐다. 재미있는 것은 동행하는 가이드들이 차 안이나 일정한 장소에서 뮤지컬이나 연극을 통해 그 장소의 역사성과 문화 등으로 주제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2시간 30분의 투어시간이 지루할 틈 없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참여한 투어객 모두가 즐거워했고,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같이 아파했으며 끝날 무렵엔 아쉬워 했다.

요술과 같은 시간 동안 그 지역의 역사를 배우고 공감하게 하는 특별함은 광주시민의 자부심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주제는 달랐으나 최종 목적지는 모두 광주 5·18을 대표하는 장소에서 마무리됐다. 그러고 보니 옛 전남도청이 있는 오월광장뿐만 아니라 거리 곳곳이나 대학 캠퍼스 등 어느 곳에서든 광주의 5·18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리도 아픈 상처는 꽁꽁 싸매어 덧나지 않게 해야 살아갈 수 있을것 같은데, 그들은 드러내는 방법을 택했다.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면서 광주를 지켜낸 것에 대한 자부심을 공유하며 지역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공유하며 만들어온 정체성은 구성원들 스스로 자존감을 가질 수 있고 서로 존중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구구절절 우리가 얼마나 어렵게 살아오면서 이를 극복해 현재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해왔는지를 설득하려 하지 않아도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구성원 개인으로서 지역에 기여하는 숭고한 책임이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인정받을 때, 이 터전에서 살아온 것에 대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그 감정은 최선을 다해 후대가 먹고 살 자산과 정신으로 남겨지면서 지역의 고유성을 이어간다. 그것이 정체성이다.   

복지는 사전적으로 행복한 삶이라고 정의돼 있다. 정체성이 명확한 지역일수록 사는 지역에 대한 만족도와 삶의 질이 높아지고 당연히 행복감이 상승한다. 복지라는 명분으로 물질적인 지원이 점점 많아지면서 지원받고 있는 동네어르신들도 우리 아이들 세금이 더 늘어날 것이라며 썩 탐탁해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가끔 듣는다. 복지는 물질의 부족함을 해소해주는것 만큼이나 정신적 만족에 관심을 두는 것도 중요하다.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8 더 나은 삶의 질 지수(The Better Life·BLI)'에서는 조사된 40개국 중에서 우리나라는 하위권인 30위로 분석됐다. OECD 외에 유엔이나 다른 기관들의 조사에서도 삶의 만족도와 관련된 부분은 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예산은 점점 더 늘어난다고 하는데 이처럼 국민 행복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듯하다. 오히려 이 예산을 지역의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투입한다면 복지가 추구하는 삶의 행복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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