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희 ㈔제주역사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지방자치가 부활해 본격 운영된게 1995년이니 어느덧 4반세기를 바라보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지방자치는 그동안의 세월 속에 제도적 보완을 거치면서 많은 발전을 이뤄냈고, 지역의 현안이나 문제점을 지역주민이 스스로 해결한다는 지방자치의 취지를 확대해 오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고 미비한 내용이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가 내년부터 읍·면·동장 추천제를 시행한다는 것은 지방자치의 주민주권 측면에서 또 한걸음의 전진으로 볼 수 있다.

알다시피 읍·면·동장 추천제는 주민이 자신들 지역의 읍·면·동장을 뽑는 제도로 주민이 투표를 통해 추천한 후보를 자치단체장이 읍·면·동장으로 임명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읍·면·동장을 결정하는 주민추천위원회의 대표성과 연고주의가 강한 제주에서 선거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는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을 안 담글 수는 없다.

지방자치는 크게 지방분권과 주민주권으로 나뉜다. 지금까지 지방자치의 논의 중심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에 초점을 둔 지방분권으로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간섭없이 재량을 가지고 여건에 맞는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중앙정부 권한을 이양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반면 주민주권은 지방정부와 주민과의 관계에서 지방정부 주인이 주민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지방정부 관할구역 안에서의 최종적인 의사결정 권한은 주민에게 있음을 규정한다. 따라서 지방자치 발전방안 논의에서 주민주권은 지방분권만큼이나 중요한 지방자치의 담론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인 주민주권은 4년마다 투표를 통해서만 주민주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넘어서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의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고, 가치를 공유하며, 그 문제의 현실적 해결까지 이르게 하는 판단과 결정을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주민이 돼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한 과정의 반복적 학습을 통해 성숙한 주민자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읍·면·동장 추천제는 주민주권을 실현하려는 방안의 하나이다. 그동안 읍·면·동장 추천제는 몇몇 광역지자체나 기초지자체에서 시행했었거나 진행 중이다. 서울 금천구가 개방형 직위로 시행한 바 있고 광주 광산구가 시행 중에 있으며, 세종시는 지난해 조치원읍을 시범으로 한 후 7개 읍·면·동으로 확대하고 있다. 

읍·면·동장 추천제는 완전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부활인 읍·면·동장 직선제로 가기 위한 중간성격으로 볼 수도 있다. 직선제를 하기 위해서는 법령 개정 등 선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정부의 자치분권종합계획에는 '제주·세종형 자치분권 모델'에서 '마을·읍·면·동 자치 등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 직접민주주의 활성화로 '주민 중심의 분권모델 완성'을 명시한다.

과거 이승만 정권과 4·19혁명 후 잠깐의 지방자치에서 읍·면·동장 직선제를 시행한 시기도 있었다. 광주 광산구나 세종시의 한계도 읍·면·동장 추천제의 대상을 공무원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으로 이를 민간인에까지 확장해야 진정한 주민주권의 실현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인 주민주권의 실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향후 성공의 선결조건과 충분조건이 필요하다.

선결조건은 100여명으로 구성되는 주민추천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이다. 추천위원을 단체장 등 지역의 주요 인사들 위주로 구성한다면 제도나 주민주권의 취지를 살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충분조건으로는 후보자의 읍·면·동 운영계획, 이력소개, 정견발표 등을 공개해야 하고, 향후 지금 읍·면·동장의 권한을 늘리는 주민자치권 확대를 병행해야 읍·면·동장 추천제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