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제주어육성보전위원·시인·논설위원

산업사회를 지나 지금은 인문학 시대라고 한다. 인문학은 문학과 역사, 철학을 아우르는 복합 지능이 기반이라 시인인 필자는 문학적인 상상을 어떻게 형상화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탑하동 바닷가다. 물결소리를 자장가 삼아 컸으니 바다에 대해선 잘 아는 편이다. 수평선을 오래 바라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수평선은 밋밋해서 광활하다. 세상 모든 높이의 시작이고 수평선 위로는 섬 말고는 건축물이 극히 없어서 달려가는 바람도 네 귀가 살아있고 수평에 그어진 선은 비바람이나 눈보라에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으므로 중용의 현장이다.

신은 인간에게 네 가지 선물을 주셨다고 '신의 선물'이라는 시를 썼다. 우선 태어나야 하므로 정액을 주셨고, 어서 크라고 젖을 주셨다. 더불어 부지런히 살라고 땀을 주고 다시 구름이 되라고 눈물을 주셨다. 다시 구름이 되라고 눈물을 주셨으니 영원히 평온한 휴식을 지닐 수 있어 인간은 신이 고마워서 술을 빚어 바쳤다.

모르는 남들과도 더불어 살아야 하므로 많은 사람과 사귀었다. 사귀는 것은 더불어 사는 일이므로 좋은 거다. 두 사람의 귀는 네 개니까 들어주는 일도 두 배가 아닌가. 속으로 깊이 사귀려고 하면 속삭여야 하는데 사귀다 보면 속이 상할 때도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 마음을 무척 삭여야 한다.

나도 늙었으니 늙음을 위해 한자 老를 눈여겨본다. 흑토에 빗금이 그어져 있어 반은 흙속에 들어 누운 형상이다. 그것도 비수를 품고. 한자 효도 孝자도 눈여겨보면 비슷한 모양이다. 아들 子도 반은 흙 속에 있다.

문학 강의를 하려고 서울로 갔다. 지하철 좌석이 만원이라 손잡이를 잡고 '어느 세월에 너와 내가 만나 점 하나를 찍을까?' 입속으로 유행가를 읊조리는데 복스러운 중년여인이 기어이 자리를 양보하는 바람에 못이기는 척 앉긴 했지만 어느 세월에 남이 자리를 양보해 줄 만큼 내가 늙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여 무정한 세월에 너와 나는 만나지도 못하고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한다니 인생이 갈수록 서글프다고 자탄했다. 오죽하면 어느 세월에 점 하나를 찍을 것인가의 속내는 나라는 별과 너라는 별이 별똥별이 돼 빗금을 그으며 어디론가 떨어질 때 서로 교차되는 지점에 형성된 바로 그 점 하나라는 거다.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유성처럼 흘러가야 하다니 기가 막힌다.

사십 대 중반에는 따스한 가을볕에 서 있으면 낙엽 타는 냄새가 나고 갈치 비린내도 난다. 후각도 온전해서 사는 맛이 넘쳤지만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 같다고 철학적인 사유를 끌어들였다. 

이제 수십 년 세월이 흘러 칠순이 넘고 나니 먼 하늘만 바라보아도 무엇인가 잃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소회를 밝히게 됐다. 깊이 말하자면 젊은 시절에는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 같다고 뒤늦게 깨달았다면 노인반열에 들어서니 가을볕에서 낙엽이 타는 냄새가 나거나 갈치 비린내가 나지 않아도 상실은 당연한 현실이라고 직시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어찌하든 태어나는 것은 운명이고, 살아가는 것은 숙명이다. 자세히 언급하면 운명은 하늘이 내린 명령이고 숙명은 살면서 풀어야 할 숙제니까 초등학교 다닐 때 받은 숙제처럼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이다. 가령, 내 아내와 내가 부부로 만난 것은 운명이고, 어떤 부부로 사느냐가 숙명이다. 내가 시인이 된 것은 운명이고, 어떤 시인이 되었느냐는 것은 숙명이다.

이제 식구라고는 웃어도 불쌍한 아내뿐이다. 세월이 흘러서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장인어른도 장모님도 돌아가셨다. 아이들도 결혼해서 다들 따로 산다. 이제 우리만 남았으니 실컷 싸워도 된다. 이혼해도 재혼해도 말려 줄 사람이 없으니 외롭다. 아내가 나를 닮아서 부지런히 늙어간다고 동병상련을 지니자. 아등바등 천둥 번개에 쫓겨 다니다가 어디선가 다들 만날 거다. 너그럽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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