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길 서귀포의료원장

얼마 전 중국에서 흑사병환자가 발생했다는 짤막한 언론보도가 있었다.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마못이라는 야생토끼를 잡아서 날고기로 먹은 두 사람이 흑사병에 걸렸다고 한다. 잘 알지는 못해도 흑사병이라는 말만 들어도 막연한 공포심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직업이 의사지만 흑사병에 대한 기억은 고등학생 때 읽은 데카메론과 대학에서 배운 것이 거의 전부다. 단테의 신곡에 견주어서 인곡이라고도 하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중세유럽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흑사병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14세기 중세유럽 피렌체 교외 별장에 흑사병을 피해 도망쳐온 열 명의 남녀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을 모아놓은 옴니버스형식의 단편소설이다. 

당시 흑사병은 수십 년 동안 유행하여 유럽인구의 1/3정도에 해당하는 수천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정확한 인구조사를 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으니 믿거나 말거나 그만큼 희생자가 많았다는 뜻이다. 몽골초원지대에 있던 흑사병이 몽골군의 유럽원정 때 유럽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6세기 동로마제국에서도 크게 유행했는데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매일 수천 명씩 죽어나가서 인구가 절반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이렇게 흑사병은 몇 차례 인류역사를 바꾸어놓았다. 17세기 영국 런던에서도 흑사병이 창궐해서 당시 런던 인구의 20퍼센트 정도가 죽었으며 19세기 말에는 중국에서도 크게 유행했다. 20세기 들어서도 아프리카나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꾸준히 발생하고 미국에서도 매년 환자가 생기고 있다. 중국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계속 환자가 발생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다가 이번에 언론보도를 통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래 발생한 적이 없어서 그냥 역사에나 존재하는 병으로 까맣게 잊어버렸던 흑사병이 갑자기 역사책을 찢고 나온 느낌이다.       

페스트는 전염병을 뜻하는 라틴어 보통명사 Pestis에서 유래했다. 흑사병이란 말은 페스트에 걸린 환자의 피부가 괴사되어 까맣게 변하면서 죽어가는 데서 나왔다. Yersinia pestis라는 페스트균에 감염되어 발병하는 급성 열성질환이다.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 다람쥐 같은 설치류나 흑사병환자의 피를 빨아서 감염된 쥐벼룩이 사람을 물면 흑사병에 걸릴 수 있다. 흑사병에 걸린 환자의 객담을 통해서도 전염될 수 있어서 사람이 주된 전염원이라는 주장도 있다. 유명세와 달리 페스트균은 항생제에 잘 들어서 치료만 잘하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막연한 공포심을 느낀다. 흔히 하는 말로 알고 보면 별것 아닌데 말이다. 흑사병도 그렇다. 항생제에 잘 들어서 과거처럼 치명적이지 않지만 SNS를 통해서 잘못된 정보가 급속히 퍼져나가서 우리사회가 집단히스테리를 일으키거나 과거 마녀사냥과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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