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주 사단법인 제주올레 상임이사·논설위원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점점 파헤쳐지다 보니, 버려지고 잊혀진 땅들에까지 눈이 가고 마음이 간다. 제주올레 길을 걸으면서도 아름답고 멋진 풍광보다는 무심하게 버려진 장소들에 눈이 가곤 한다. 가령 쓰레기나 덤불에 뒤덮인 나대지, 공사중 수년째 방치된 건물, 쓰임새를 다하고 수년째 폐건물로 자리만 지키고 있는 양식장 등 올레길 주변에서만도 버려지고 잊혀진 건물과 땅이 수없이 눈에 들어온다. 버려지고 잊혀진 그 건물과 땅들은 아름다운 제주 풍광에 상처가 되고 있다. 아름다운 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폐양식장과 폐건물은 얼마나 흉측한가.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 나지(裸地)는 또 어떤가. 

제주올레는 올 한해 동안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함께 <제주 해안가 국공유 나지경관 가치 복원 연구>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버려지고 잊혀진 땅들에 대한 연구 조사를 벌였다. 올레길을 중심으로 해안가 일대 100m 폭으로 국공유지 485개 필지를 조사했다. 이 가운데는 특정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곳도 있지만, 쓰임새 없이 덤불이나 쓰레기로 뒤덮여 있는 곳이 적지 않았다. 누군가 불법으로 점유해서 가건물을 넣어 이용하거나 폐기물을 쌓아둔 곳도 있었다. 제주올레와 JDC는 그 가운데 여행객들의 눈에 쉽게 띄면서 주변 경관에 어울리지 않게 지저분해진 28개 필지를 골라냈다. 특별한 사용 계획이 없으면서 앞으로도 계속 방치될 가능성이 높은 곳부터 친환경적으로 경관을 복원하는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우선 올해 안에 한경면 고산리에 방치된 도유지에 지역 주민과 올레꾼을 위한 자연 쉼터를 조성할 예정이다. 다 쓴 농약병 등을 쌓아두는 농업 폐기물 저장소 인근인데, 그 주변으로 폐타이어와 농자재들이 어지러이 놓여있어 경관을 해치는 데다 나무 한 그루 없어 올레꾼과 주민들이 쉴만한 그늘이 없는 지역이다. 제주올레와 JDC는 한경면이 관리하는 이 곳 도유지에 나무와 꽃들을 심어 주민과 올레꾼을 위한 나무그늘을 제공하는 한편 주변 경관을 아름답게 꾸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쉼터를 만들고 있다. 제주올레는 고산리 경관 복원 사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파트너들과 함께 기회와 여건을 만들어가며 버려진 국공유지의 경관을 되살려낼 계획이다.    
지금과 같은 개발 붐 아래에서 경관 복원 사업은 '언 발에 오줌 누기'가 아니냐고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나지 경관 복원보다 무분별한 개발 붐에 제동을 걸어 제주의 자연환경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게 하는 것이 물론 가장 급하고 빠른 길이다. 최근 몇 년간 제주도에 불어 닥친 개발 광풍은 제주 곳곳을 수없이 파헤쳤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경관 변화를 초래했다. 개발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가이드라인을 세워서 무분별한 개발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행정이나 정치권은 여전히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하기 바쁘고, 도민 여론 또한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곶자왈에 대한 시각과 정책만 해도 그렇다. 곶자왈의 중요성을 깨닫고 곶자왈 보전 운동이 시작된 지 20여년이 흘렀는데도 곶자왈 보호에 대한 별다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사이에 곶자왈 지대의 25% 이상, 전체 곶자왈의 4분의1이 각종 개발사업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다행히 최근에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통과되면서 곶자왈 지대 난개발을 막을 수 있을 듯한 희망을 품게는 됐다. 곶자왈 사례처럼 법과 정책을 보완해 개발 붐에 제동을 거는 데는 그만큼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주올레는 법이나 정책을 통한 변화를 도모하는 동시에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차근차근 해보자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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