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제주는 뭔가 독특하고, 특별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자연에서 오는 상큼한 매력도 많지만, 제주인들이 오랜 시간 자연의 품속에서 만들어낸 문화적 특성에서 그 맛을 느낀 것이다.  

현재 제주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는 문화적 자산들을 보면, 화려하지도 않고, 웅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형과 어울리는, 오히려 촌스러운 듯한 지역적 특색이 물신 풍기는 형상일 뿐이다.

언제부턴가 이런 매력을 우리는 제주다움이란 얘기로 귀결하고 있다. 제주가 제주다움이란 그 형상을 보여주는데는 척박한 땅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나름의 길을 가꾸어왔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탐라시대에 해양을 주름잡은 왕국이 되기도 했었고, 고려시대에는 의도치 않은 대륙의 땅이 되어 주변을 침략하기 위한 군수물자의 땅이 됐는가 하면, 조선시대에는 수많은 목사들의 유람지이자, 왕도(王都)와 거리가 멀다하여 목사들의 전횡을 일삼는 곳이 되기도 하였고, 절해도고(絶海孤島)의 섬이 되어 위리안치가 가장 쉬웠던 최악의 유배지이기도 했다. 

지금에 남겨진 제주다움을 보면 아직도 세종대왕이 재임 당시 언어 유형이 유네스코 소멸위기 언어 제주어란 이름으로 그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고려시대 군수물자는 제주의 특산인 천연기념물 제주마로 가치를 인정받았고, 도내 곳곳 명승지마다 조선시대 한 획을 그었던 정치세력들의 명문과 명필이 문집과 마애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뿐이랴 한라산을 분화구로 한 지형은 지표 아래와 위를 신비하게 조성해 주었으며, 축복 받지 못한 대지로부터는 밭담을 활용한 나름의 경작논리를 마련하였고, 제주 섬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에서는 해녀들의 경제산업구조를 세계가 인정해주었고, 그곳에서 나온 정신문화는 1만8000신이란 신화로 독특성을 풀어내었다. 

이런 오랜 시간을 품은 뒤에야 만들어진 제주 그 자체에 대해 최근 왜 제주다움이란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일까.

아쉽게도 제주는 최근 10~20년 사이 급속히 제주다움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유산은 경외로움을 가장한 박제된 모습으로 전시되고 있으며,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근현대의 형상은 일률적인, 단순 정주의 편의성만을 위시한 도시계획에 의해 사라져버렸다. 

그나마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 머무르는 듯한 매력을 가진 원도심에서 간간히 보여주었던 근현대 역사적·상징적 건조물들도, 섬이란 지형적 삶의 터전에서 군사 무기이자 무역품, 진상품이었던 물자때문에 조성할 수밖에 없었던 중산간의 잣성도, 해안가를 돌며 당연히 보여주었던 생활유산인 신당, 불턱, 용천수도, 조선시대 처절한 관방의 유산인 환해장성들도 유실이 당연하듯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 모두에는 제주에서 가장 많은 건축 재료였던 제주 돌이 자연스럽게 혼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서울시는 이런 정체성 없는 도시 문제 때문에 역사문화자원을 보호하는 재생사업을 진행해왔다. 그 중의 하나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미래유산으로 남기는 작업, 미래유산제도이다. 문화재가 아닌 것을 대상으로 2015년부터 출발한 이 제도는 현재 461개를 지정하여 SNS, 홈페이지, 블로그를 통해 홍보하면서 특히 과거와 현대를 잇는 소실될 우려가 있는 유산에 대한 보호 조치를 진행해왔다. 

반면 제주는 미래유산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향토유산이란 제도를 서울시보다 10여년 일찍 가지고 있었으나, 서울시의 8% 정도 수준인 32건만 지정되어 보호관리 되고 있을 뿐 도민들은 그 조차 모른다. 

좀 더 일찍 제주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발굴, 보호, 활용이 있었다면, 국제자유도시 개발에 맞춰 좀 더 일찍 향토유산제도를 활용했다면, 중세와 현대를 잇는 문화경관이 단절되는 괴리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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