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논설위원

용암해수 국내판매 진실공방
대기업 이윤추구 수단 안돼

'라쇼몽 현상'이라는 게 있다.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작 영화 '라쇼몽'에서 유래한 말이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사무라이와 아내가 길을 가다가 도적을 만나 사무라이가 살해된다. 그런데 살인사건을 두고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진술은 모두 다르다. 사건 현장을 발견한 나무꾼도, 도적을 잡은 사람도, 범인인 도적도, 사무라이의 아내도, 죽은 사무라이가 빙의한 무당도 각자 자기 입장에서 서로 다른 증언을 한다. 이처럼 '라쇼몽 현상'은 사건은 하나이지만 각자의 입장에 따라 해석은 제각각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 제주에서도 '라쇼몽 현상'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용암수'의 국내 판매를 둔 제주도와 오리온의 공방이다. 

오리온은 2016년 제주시 구좌읍 용암해수단지 내 제주 토착기업인 제주용암수 지분을 인수하고 용암해수(염지하수)를 이용한 음료사업에 진출했다. 논란은 올 12월부터 오리온이 '제주용암수' 제품을 본격적으로 출시하면서 불거졌다. 국내시장에 먼저 판매한 후 해외시장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삼다수'와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 제주도는 반발하고 나섰다. 오리온이 2017년 제주용암수 사업설명회를 가질 당시 중국과 동남아 등 해외시장 진출 계획만 밝혔을 뿐 국내 판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곧 국내시장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것이란 입장이다. 원희룡 지사와 오리온 부회장이 만난 자리에서 국내 판매를 않기로 구두약속을 했다고도 한다. 또 오리온측에 공문을 보내 국내출시는 안된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는 것이다. 

오리온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국내시장 진출을 않겠다고 밝힌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업초기부터 국내판매 의사를 밝혀온데다 도지사와 제주도 관계자도 이에 수긍했다는 주장이다. 또 제주도가 보냈다는 공문도 국내출시가 안된다는 요구라기보다 삼다수와의 경쟁에 대한 우려와 함께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도록 의견 제시 성격이었기에 굳이 답변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양측의 주장이 그저 주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국내 판매와 관련한 어떠한 공식화된 문서나 협약서도 없이 서로의 입장에서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제주도는 오리온이 국내 판매 계획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용암해수 공급 자체를 막겠다는 초강수를 두고 있지만 때늦은 뒷북대응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오리온이 2017년 음료사업 진출을 공식화하고 제품을 출시하기까지 지난 2년간 구두약속과 답변도 못받은 문서만을 믿고 손을 놓고 있었다니 답답한 일이다.   

애초에 용암해수인 염지하수 역시 지하수와 마찬가지로 공수화 개념에 따라 민간기업의 제조·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지방공기업만 개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후 제주특별법 개정으로 제주용암해수산업단지와 같은 '제주도지사가 지정·고시하는 지역'에 한해 예외적으로 제조·판매를 허용하게 된 것이다.  

용암해수를 활용한 신성장산업 육성에 나서겠다는 것이었지만 당시에도 공수화 원칙이 무너지고 제주 물의 사유화에 대한 우려가 적지않았다. 그런 만큼 오리온의 음료사업 진출에 대한 제주도의 행정 처리는 너무도 안이하고 허술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용암수' 국내 판매 공방은 제주도와 오리온 양측간의 해석의 차이인지 어느 한쪽의 거짓말인지 지금으로서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란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진실은 제주의 물은 모두 소중한 도민의 공공자산이라는 점이다. 대기업이 이윤추구를 위한 사유재로 마음대로 뽑아쓰도록 해서는 곤란하다. 제주도나 오리온이나 무엇보다 이를 염두에 두고 해결책 모색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공공재로서 염지하수의 무분별한 사유화를 막기 위한 관련 제도 정비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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