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맞은 제주

제주의 겨울은 한라산에서 시작된다. 지난달 19일 첫 눈이 내린지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한라산의 눈은 가을에 시작돼 다음해 봄까지 볼 수 있다.

제주는 좀처럼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 한겨울에도 텃밭에 채소가 자라는 섬이다. 시내에서 눈 구경하기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아 언뜻 보면 겨울이 비켜가는 섬같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한라산과 중산간의 존재로 인해 제주는 가을부터 황홀한 '설국'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섬이다. 

특히 한라산에서는 이맘 때면 매서운 찬바람을 맨몸으로 맞던 앙상한 나뭇가지가 하얀 솜옷을 걸친다. 거센 눈보라가 휘날리지 않아도 나무의 솜옷은 커져만 간다. 

사람들은 자연이 빚은 이 예술작품을 '상고대'라고 부른다. 구름이나 안개의 미세한 물방물이 나뭇가지에 붙어 얼면서 바람결 따라 만들어지는 상고대를 감상하기에 한라산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겨울의 복판에 이르면 1100고지나 중산간도로에서도 활짝 핀 눈꽃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내려앉은 눈꽃과 하얀 눈 가운데 가슴 시리도록 붉게 빛나는 동백꽃, 사철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는 침엽수 옆을 천천히 걷다보면 올 한 해도 차분히 마무리할 수 있다.

지금의 겨울은 첫 눈을 기다리거나 눈꽃세상을 찾아 트레킹을 떠나는 낭만의 상징이지만 예전의 겨울은 쉽지 않은 계절이었다. 

봄에는 꽃 맞이, 여름에는 물 맞이를 찾아 떠나고 가을에는 풍성한 수확을 맞지만 유독 겨울 맞이는 단단한 대비가 필요해서 월동준비라는 풍습도 생겼다.

난방을 위해 집집마다 땔감이나 연탄을 가득 쌓아둬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편리한 보일러가 있는 지금도 어려운 이웃과 함께 겨울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사랑의 연탄 배달'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김장 담그기도 빼놓을 수 없는 겨울맞이 풍경의 하나다. 타 지역처럼 많은 양을 한꺼번에 만들지는 않지만 겨울을 앞두고 갓 담근 김치는 아삭한 맛으로 추위에 움츠러든 몸과 미각을 깨워준다. 지금은 종교·시민단체나 봉사단체를 중심으로 한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가 활발히 진행돼 또 다른 겨울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봉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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