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일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어느 발표자는 우리나라 전국 방언을 각 '지역어'로 구분하여 제주말을 한국어에 분화된 언어로 보았다. 이는 큰 실수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주 말은 어떤 말에서 분화되거나 어디에 소속된 언어가 아니다. 제주 토박이말은 독자적으로 자생한 제주 고유 언어이다. 제주 말을 어느 한 지역어로 다루는 건 경계해야 한다.

진정 제주 토박이말을 지켜 살리고자 하면, 제주 말을 문어(文語)보다는 소리(음성) 위주의 구어(口語)로 적어야 한다. 살아 숨 쉬는 말소리로 적어야 제주 토박이말이 훨씬 살아난다. 편협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면 제주 말은 일개 지역어로 위축되기 쉽다. 말에는 일정한 소리와 형태와 의미가 있고, 순서가 따른다. 언어 교육에서 제주 말을 가르치고 배울 적에 문법 중심, 어휘 중심도 좋지만 소리(음성) 중심이 주가 되어야 한다. 말소리에는 고저장단이 있고 독특한 억양과 말투가 있다. 말에는 일정한 말의 법칙(어법)과 글의 법칙(문법)이 존재한다. 소리(음성)를 적는 음소 표기와 형태소를 적는 형태 표기를 어법과 문법에 맞게 적어야 올바른 의미 전달이 된다. 

왠지 사람들은 '제주 방언'이라 하면 사투리로 여겨 거부감을 갖는다. 지금까지 나온 주요 사전들은 모두 '제주 방언'으로 적었다. 그런데 근래 제주도가 '제주어 사전'으로 발간했다. 이는 언어를 다루는 언어관에서 비롯된다. 그릇된 언어 인식(의식)이 오류와 왜곡을 낳을 수 있다. 

제주도는 생활여건의 변화에 따라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쪽(성산) 사투리, 서쪽(고산) 사투리, 산남(서귀포 쪽) 사투리, 산북(제주시 쪽) 사투리에도 차이가 있다. 세대에 따라서도 다르다. 옛 문헌에도 "제주도의 말씨는 사투리가 심해서 알아들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제주 토박이말의 특색은 말끝이 바늘처럼 날카롭고 높다는 '어미침고(語尾針高)'다.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를 흔히 '짝짝 왜여가난 귀눈이 왁왁한 모습'이다. 바닷가 섬에 사는 사람들은 큰소리로 말을 하거나 말을 짧게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주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파도소리랑 바람소리에 말소리가 방해를 받기 쉬워 고성으로 지르다 보면 그게 습성처럼 되어버린다.  

제주말의 장점 중 빼어난 점은 아래아의 존재이다. 아래아 사용이 제주말의 특징이요 매력이다. 어찌 보면 제주 말에는 성조(聲調)가 거의 희박하다. 성조는 소리의 고저장단이 구별되어 억양-말투와 연관된다. 경상도 말과 중국어는 독특한 억양을 지닌 성조언어다. 제주 말에는 성조가 거의 희박한 까닭에 다른 지방이나 외국어를 쉽게 빨리 배워 언어 구사능력이 유창하다. 이는 국제화(글로버) 시대 외국어를 배우는 큰 장점이요, 매력이다.

'세계 언어학자들에게 듣는다'는 표제어도 실속 없이 비춰진다. 껍데기 보다는 '알맹이' 있는 '제주 토박이말'을 지켜 살리는 길을 찾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순금 100% 가락지보다는 18k 가락지가 더 실용적이다. "아름답게 꾸민 말은 신뢰가 없다"는 노자(老子)의 말을 새기게 된다. 눈을 뜨자(開眼).

인사말인 환영사, 축사를 한 일곱 분이 이구동성으로 모두 '제주어'란 용어를 사용했다. 위정자들이여! 말과 글 표현에 보다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길 바란다. 맹목적으로 어떤 단어 선별 없이 주장을 펼치고 목적을 추구하기 보다는, 비판과 수용에 겸허해야 더더욱 발전이 따른다. 

말에는 소리가 있고, 뜻이 있고, 씨가 있고, 순서가 있다. 게다가 말하는 사람의 주체(정체)가 담긴다. 외세(外勢)에서 벗어나 한자 문화권에서 한글 문화권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래야 민족의 고유한 풍속과 순수한 삶을 누리게 된다. 

제주도청에서 '제주어 사전' 개정판을 다시 낸다고 하니, 알맹이 있는 '제주 토박이말 말모이'가 되기를 고대하면서 청원한다. 어차피 제주 토박이말을 지켜 살려야 할 일이라면 '제주어'란 표현보다는 '제줏말'이나 '제주 토박이말'을 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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