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문철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논설위원

교수신문이 지난 15일 2019년을 정리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 발표했다. 이는 교수신문이 2001년부터 추진해 오고 있는 사회진단 기획으로, 당해 연도 우리 사회의 궤적을 가장 적확하게 풀어낸다는 세평을 받고 있다. 올해도 단 네음절에 불과한 짧은 단어지만, 이 나라 최고의 지성들의 시선은 매우 함축되고 정제된 언어로 오늘의 우리 사회를 예리하게 갈파한다.   

공명조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가 달린 상상과 전설의 새다.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이 새는, 한 몸에 붙었지만 두 머리는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들의 이름은 '가루다'와 '우파가루다'인데, 잠도 밤과 낮도 서로 엇갈려 잔다. 어느날 가루다가 잠든 새에 우파가루다가 맛있는 열매를 혼자만 먹어치웠다. 잠에서 깬 가루다는 왠지 자기도 배가 부르고 맛있는 향내가 나는 걸 알고서는 우파가루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눈치를 챈다. 이에 원한을 품은 가루다는 복수를 벼르다 며칠 뒤 우파가루다 몰래 독이 든 열매를 먹어버린다. 결국 가루다와 우파가루다는 둘 다 죽고만다.

이러한 사자성어를 뽑은 교수들은, 조국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극도의 좌우 분열상을 보이게 된 데 따른 안타까움과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분열상이 마침내 정치권을 넘어 온 국민적 정서마저도 빨려들어가는 현상을 문제로 지적한다. 아울러 이러한 분열상을 해소하려는 노력보다 되레 이를 자기들의 목적에 이용하려는 지도층들의 행태를 꼬집는다. 교수들의 시선은 예리하다. 서로가 자기만 살려고들 하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공명조처럼 결국 자기도 죽게된다는 것을 모르는 듯한 한국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 단어를 채택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진단은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역시 이 나라 최고지성들의 고감도 청진기가 한국사회라는 몸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잘 읽어낸 듯하다. 

본시 국리민복을 도모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념일진대, 오늘날 이 나라에 정치한다는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 같은 한낱 필부의 눈에도 나라의 구석구석이 불안과 걱정 투성이어늘, 이 판국에 정쟁은 무슨 정쟁이며, 정쟁을 한다한들 어찌 이토록 죽기살기로 한단 말인가. 타협은 온데간데없고 붙었다 하면 서로가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이니, 국민은 어디 불안해서 살겠는가. 

국가경제와 외교안보 상황이 이렇게 불안할 수가 없는데, 정치인들의 안중엔 오직 총선만 있단 말인가. 도대체 국민에게 여(輿)는 누구이고 야(野)는 누구란 말인가. 농도의 문제일 뿐, 진보에도 보수가 있고 보수에도 진보가 있어야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일진대, 하나가 진보면 전부가 진보, 하나가 보수면 온통 다 보수여야 하는 이런 무지막지한 사회가 과연 정상사회인가. 보수와 진보가 조화와 균형을 잃은 채, 특정한 지역과 세대가 온통 진보 아니면 보수로 양분되는 이런 사회가 안정사회란 말인가. 정책에 따라 이것은 이 당이, 저것은 저 당이 좋을 수도 있어야지, 싹쓸이로 전부 아니면 전무로 나뉘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는 미래사회로의 도약을 심대히 방해한다.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란 용어가 제대로운 개념으로 쓰이고는 있는지, 솔직히 회의적인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진보와 보수의 진면목이 정녕 이런 것인가.

요즘은 어떠한 이슈에 댓글을 하나 달아도 죽기살기로 덤벼든다. 그 표현이 잔혹스럽기 이를 데 없다. 지지나 반대를 해도 예전엔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었다. 국민정서가 너무나 거칠어졌다. 이제 우리 모두 제자리로 돌아와 가뿐 숨을 고르며 조용히 눈을 감자. 결국 여와 야도, 보수와 진보도 어차피 공명(共命)의 '가루다'와 '우파가루다'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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