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대한민국무공수훈자 제주지회 회원

무공수훈자 회원 20여명은 가을바람에 떠밀려 지난달 4일부터 9일까지 베트남 전적지를 방문했다.

5시간 비행끝에 호찌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호찌민 시는 공산화되기 전에는 사이공이다.

어원은 무성한 숲의 의미를 부여한다.대중교통은 오토바이 천국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은 "동양의 파리" 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주식은 쌀밥이면서 외식 문화는쌀국수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베트남의 여성 전통예복은 아오자이다. 어원은 '아오' ― 옷, '자이' ― 긴, 즉 긴치마를 뜻한다.
한국 여성의 예복은 한복이다. 우리는 농짝에 감추어 놓고 명절 혹은 특별한 예식 때만 입는다. 꿀단지처럼 감추기 문화 같다.

또한 우리가 갔을 때는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고, 몇 분씩 비가 그처다  내렸다 반복 했다.
다음 날 구찌 터널을 탐방했다. 월남전은 잔혹한 전쟁과 게릴라전의 흔적이 여전히전해지고 있었다.

땅굴은 무려 250여㎞였다. 현재는 20㎞를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어쩌면 노아의 방주처럼 땅굴 속은 전투호 와 교통호, 회의실, 식당, 병원, 학교, 조산원 등 갖추어져있어 지하 도시를 연상케 했다.

베트콩은 낮에는 밭농사를하고 밤에는 유엔군과 전투를 했다. 걔들의 전투 장비는 연약했다.

미군이 쓰다 버리거나 탈취한  무기 등을 획득하여 연금술사처럼 부비추럽으로 개조해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3일차는  다낭의 청룡부대 주둔지를 방문했다. 사령부 건물은 정문 기둥과 주춧돌 만이 그때를 말하듯 했다.

그러나 베트콩과 싸웠노라고 했을 때는 눈에서 광채가 빛났고, 노익장이면서도 열변을 토하면서 "죽었다 살았노라고" 전쟁터는 그랬다.

베트남은 기원전 2919년에 건국했다. (고조선과 비슷한 시기) 한나라와 명나라에 부속되었고, 프랑스 식민지였다. 

월남 파병은  31만2853명이 참전했다. 큰고 작은전투는 55만 여회 작전을 펼쳤다. 5000여 명이 전사하고 수만 명이 부상을 했다. 

잊혀져가는 월남 파병 역사, 누군가는 기억되기를 바라는 희망 사항인지 모른다. 우리는 그 종잣돈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당시 국민적 환송과 환영이 대단했으며 무사 안녕을 빌며,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은 장 사병과 그 가족들의 오랜 세월을 우리 가슴을 울렸다.

필자는 그 당시 현충일에는 박(朴) 대통령이 행사장에 참여로 경호작전을 수행했다. 

예포가 울리고 진혼곡이 울리면  월남 파병 묘역은 참여 객으로 눈물바다가 되어 동작동이 떠나갈 듯 했다.

베트남인은 처참한 역사와 가난 그리고 신분의 질곡을 넘어서 약동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메콩강의 기적을 이루려고 애쓰고 있었다.

우리는 진솔하게 소통하면서 이웃과 공감과 이해를 넗혀야 하고, 호헤적인 존재로 거듭날 때 행복은 설렘으로 빛난다.

우라는 긴 여정 속에 제주공항에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남은 삶을 열심히 살 것을 다짐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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