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람들은 제사 등 큰 일이 있어 맛있는 음식을 만들거나 작은 음식이라도 생기면 꼭 돌담 넘어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정담을 나누는게 당연한 문화였다. 홍순병 사진작가

"재물을 잘 쓰는 자는 밥 한 그릇으로도 굶주린 사람의 인명을 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썩은 흙과 같다"(의인 김만덕)

'황금돼지의 해'인 2019년 기해년(己亥年)이 저물어 가는 연말이다. 이제 다산과 번영, 그리고 지혜와 풍요를 상징하는 '흰쥐의 해'인 2020년 경자년(庚子年)이 눈앞이다.

마음을 들뜨게 하는 연말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이 솟아나는 연초는 지나온 시간과 주변을 둘러보게 하는 묘한 힘이 있는 시기다. 털어낼 것이 있다면 훌훌 털고 채울 것이 있다면 한가득 채워보자.

새해를 앞두고 채울 것 중에는 '주변'에 대한 관심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실천하기에 가장 시기, 작은 실천이 모여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나눔' 세상에 들기에 최고의 시기다.

#'수눌음'과 '삼춘'

이웃끼리 서로 도우고 사는 것은 제주의 오랜 전통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서로 힘을 합쳐 해결하는 '수눌음'이 대표적이다.

수늘음은 다른 지역의 '품앗이'와 유사한 풍속으로 농사일 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노동이나 힘이 필요할 때 서로 도움을 얻고 되갚는 형태다. 공동으로 일을 할 때면 구성진 소리를 주고 받으며 시름과 노역을 달랬다.

수눌음은 노동력 교환을 넘어 사회의 연결망이자 안전망이기도 했다.

노약자나 혼자 사는 여성, 밭을 갈아줄 소가 없는 집도 수눌음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이웃이 하루 밭을 갈아주면 3일간 김을 매주는 식이다. 방앗돌 돌리기, 지붕 잇기 등 여러 일에도 적용되며, 김매기 시기가 아닌 수확의 시기에 갚는 것도 가능했다.

수눌음은 부농이 사람을 고용해서 일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어려운 사람들끼리 신뢰를 바탕으로 온정으로 함께 모여들어 일을 하기 때문에 신명나는 일이고, 노동의 고됨도 잊게 된다.

즉 따뜻한 이웃의 온정의 손길이자, 나눔과 보살핌이라는 제주 전통의 미풍양속이다.

'삼춘'이라는 말도 제주의 공동체 문화를 잘 나타내는 표현이다. 제주에서는 5촌 이상이라도 모두 삼춘으로 호칭하며, 친척이 아닌 어른도 남녀 구분 없이 모두 삼춘이라 부른다. 주변이 모두 '한 가족'인 것처럼 여기는 관념은 강한 공동체 의식으로 제주에서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준 원천이 됐다.

# 오랜 나눔의 역사

제주에서는 부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우리나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존경받는 여성 위인인 거상 김만덕(1739~1812)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에 가난한 제주에서 태어난 김만덕은 객주를 운영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럼에도 늘 검소하게 살면서 '풍년에는 흉년을 생각해 절약하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은 고생하는 사람을 생각해 하늘의 은덕에 감사하며 검소하게 살아야한다'는 생활철학을 실천하며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처음으로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 여성으로 기려진다

김만덕은 참혹했던 갑인년 흉년 때, 조정에서 보낸 구휼미마저 풍랑에 침몰하는 불상사까지 겹쳐 제주백성들이 굶어죽을 위기에 처하자 전 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쌀을 구입해 살려냈다.

김만덕기념관에 따르면 당시 기부한 쌀은 300석이다. 현재의 금액으로 환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쌀이 거의 생산되지 않았던 당시의 제주도에 심각한 기근 현상이 닥쳐왔을 때 내놓은 곡식의 가치는 현재의 쌀 가격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만덕의 기부는 굶주려 죽어가는 제주도민 전체를 열흘 동안 연명시키고 수천 명의 백성을 살려낼 만큼 막대한 가치를 지녔다.

「만덕전」을 쓴 채제공은 "탐라에 큰 기근이 들어 만덕이 천금을 내어 쌀을 육지에서 사들였다. 모두 만덕의 은혜를 찬송하여 '우리를 살린 이는 만덕이네'라고 했다", "만덕의 이름이 서울 안에 가득하여 공경대부와 선비들 모두 만덕의 얼굴 한 번 보기를 원하지 않는 자 없었다"며 만덕의 공을 기렸다.

김만덕 정신을 계승한 제주도민들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크고 작은 기부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고액기부자인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자가 제주에서만 100명을 넘어설 정도로 나눔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김봉철 기자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