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오늘은 그야말로 '세밑'이다. 해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남기고 떠나는 섣달그믐이 되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다사다난'이다. 2019년도 어김없이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제주4·3도 역사의 이정표에 기록할만한 희소식이 있었는가하면 분노와 아쉬움을 남긴 일도 있었다.

첫 희소식은 연초인 1월 17일 제주지방법원 법정에서 날아왔다. 제주지법은 4·3 생존수형인 18명이 제기한 군사재판 재심에 대해 무죄나 다름없는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여기에는 4·3도민연대와 변호사들의 끈질긴 노력과 재판부의 명쾌한 법리 판단이 주효했다. 

군사재판 숨은 공로 제주검찰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숨은 공로자를 찾으라면 제주검찰을 꼽고 싶다. 담당검사들은 다양한 자료를 입수하고 면밀히 분석한 결과 이례적이고 선제적으로 '공소 기각'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 최종 의견 진술서에는 4·3의 아픔에 공감하고 진실에 근접하려는 제주검찰의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요즘 질주하는 중앙검찰의 냉혹함과는 다른 제주검찰의 지적인 따스함이 엿보였다.

제주지법은 8월 21일 18명의 생존수형인들에게 국가가 53억 4천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 판결은 군법회의의 무효화를 확증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군사재판 수형인 전체 2,530명에 대한 권리구제는 아니었다. 이번에 승소한 18명처럼 희생자 개개인이 개별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법회의 무효화'와 '국가보상' 조항이 담긴 4·3특별법 개정안의 국회통과가 더욱 절실해진 것이다.

4월 3일, 제71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은 어김없이 1만여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4·3평화공원에서 진행됐다. 대학생 정향신 양이 김연옥 할머니에게 드리는 편지글 낭독은 추념식장을 넘어 전 국민을 울게 만들었다. 부모 형제 등 일가족 6명이 정방폭포에서 집단학살 당하고 바다에 버려졌기 때문에 "할머니는 멸치 하나도 바닷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손녀의 말에 전국에서 TV생중계를 보던 시청자들의 울음보를 터뜨린 것이다. 이어서 국방부와 경찰청의 사과 표명이 있었다.

6월 20일, 뉴욕 UN본부에서 제주4·3 인권 심포지엄이 처음 열렸다. 미국의 책임문제를 제기하고 4·3의 인권·화해정신을 모범적인 과거사 청산의 모델로 공론화한 이 심포지엄은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란 공적 국가기관이 주최함으로써 그 의미가 커졌다. UPI통신 등 해외 언론이 상세히 보도한 것도 성과의 하나였다.

연말에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4·3관련 기술이 대폭 개선됐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 8종이 4·3의 원인을 1947년 3·1절 경찰 발포사건에 초점을 맞추었고, 4·3의 성격을 '단독선거 저지와 통일정부 수립을 내세운 무장봉기로 규정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 교과서 8종 어디에도 '폭동'이란 단어는 없었다.

특별법개정 무산 무거운 책임 

올해에도 비록 소수이지만, '4·3은 공산폭동'이라는 주장이 계속되어 유족들이 분노했다. 아직도 "국가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공주의와 냉전사상에 찌든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런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그들은 더욱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제발 그들도 인권과 평화, 화해의 운동에 동참해주길 바란다.

한 해를 보내면서 여전히 아쉬운 점은 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일이다. 여야 모두 입만 열면 개정안 통과를 약속했지만 정쟁에 파묻혀  한 발도 나가지 못했다. 이는 정치권에 무겁게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내년 초 열리는 임시국회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정의가 구현된 화해'를 지속하려면 국가 잘못에 대한 피해자 보상과 불법적인 군법회의의 무효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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