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 제민일보 독자위원장

새해가 밝았다. 새해라는 말 앞에는 언제나 '희망의'라는 선행사가 붙는다. 새해에는 모든 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은연 중 담는 것이다. 그럼에도 금년이 희망의 새해인지는 자신이 없다. 

우리 제주사회가 언제 즐겁고 화목했던 적이 있는가라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지난 몇 해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공적인 자리는 피하고 싶다. '아이고 삼춘, 옵디가, 잘 살암지양, 내일도 보게 마씀'보다는 '저 사람은 왜 여기 왔지' '설마 내일은 오지 않겠지'라는 투로 보는 것 같아 '그냥 혼자 박아졍 사는 게 낫다'는 분위기다.

작년 제민일보가 선정한 10대 뉴스를 보자. 제2공항 건설사업 도민사회 갈등 심화, 4·3 수형인 공소기각 역사적 판결, 고유정 전 남편 살해사건 전국 충격, 60년 만에 태풍 7개 제주 피해, 선거법 위반 지사 의원 엇갈린 운명, 국내 첫 영리병원 결국 좌초, 악취관리지역 고시 2년째 농가 소송 기각, 감귤 광어 밭작물…1차산업 위기, 차고지증명제 도 전역 확대시행, 제주유나이티드 사상 첫 2부 리그 강등. 어느 것 하나 밝은 소식이 없다. 

재작년은 어떤가. 남북정상회담…감귤 200t 평양 전달, 4·3 전국화…추념식 대통령 참석, 4·3수형인 재심 유해발굴 재개, 무소속 도지사…도의회 여당 압승, 원 지사 선거법 위반 혐의 법정 출석, 제주 첫 난민 인정…갈등 심화, 국제관함식 개최…대통령 공식 사과, 세계최초 람사르습지도시 인증, 신화월드 오수 역류…행정조사 진통, 제주시 인구 50만명 시대 활짝. 이 정도면 작년보다는 조금 나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세계최초 람사르도시 인증도 받았고, 좋은 일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래도 희망 섞인 뉴스랄 수 있는 제주시 인구 50만명 돌파라는 소식 정도는 있었으니까.    

지난 두해의 10대뉴스를 보면 제주사회의 현주소를 짐작할 수 있다. 핵심단어를 뽑는다면 갈등, 환경, 4·3이다. 한 단어로 요약하라면 갈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3분야는 1947년 발발한 이래 지금까지 끊임없는 논쟁의 중심에 있어 왔다. 다행히 오랜 진실 규명 과정을 거쳐 대통령이 4·3추념식에 참석하고 사과하는 등 이제는 어느 정도 해결의 궤도에 진입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처가 워낙 깊었기 때문에 아직도 치유의 단계에 도달하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환경문제도 10대뉴스의 단골이다. 재작년 신화월드 오수 역류사건이 도민들을 경악케 하더니 지난해에는 악취문제가 터져 나왔다. 뿐만 아니라 쓰레기문제도 일 년 내내 뉴스를 장식했다.

폐기물 매립장을 건설하는 대신 보상을 해주어야 하는 등 쓰레기문제는 직·간접 문제를 재생산하면서 또 다른 갈등을 연쇄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마치 원자로에서 핵융합을 일으키면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발생시켜 지구를 박살내기라도 할 것 같은 폭발력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만들어내는 문제만이 아니다. 지난해의 60년 만에 태풍 7개 발생, 2017년도에는 중산간 제한급수 사태가 있었다. 강풍, 홍수, 한발로 재산과 인명피해가 빈발하고 있다. 환경문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기세다. 

지난해는 제2공항문제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결국 결말을 보지 못한 채 해를 넘겨 새해에도 제주사회를 짓누를 태세다. 재작년 강정항 국제관함식에서 문재인대통령은 강정항 개발과정에서 빚어진 갈등문제에 대해 사과했다. 얼마나 치열했으면 이런 경축행사에서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을까. 강정항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상처가 남아 있다. 

제2공항문제에 대한 도민사회의 갈등, 아직까지도 완치되지 않은 강정항을 둘러싼 갈등, 이 문제들은 국가적으로 필요하다면서 시작한 대규모 국책사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더 붙인다면 국내 첫 영리병원 결국 좌초라는 뉴스다. 제2공항과 강정항들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지만 도민사회가 둘로 나뉘어 격렬한 갈등을 겪었다. 결국 이 문제는 공론화라는 과정을 거쳐 일단락 지었다. 그렇다고 해도 영리병원문제가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다. 얼마간의 잠복기를 거쳐 또다시 분출할 태세다.  

환경문제를 제외하면 갈등의 진원은 많은 부분 외부에서 기원했다고 할 수 있다. 4·3은 미군정하에서 발발하여 정부수립 이후까지 전개됐으니 국제, 국내 문제이기도 하면서 제주사회 내부 갈등까지 포함하고 있다. 제2공항, 강정항 심지어 영리병원도 전통적이거나 자생적 문제만은 아니다. 왜 이렇게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것일까. 이 문제들은 사실 알고 보면 완전하게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제2공항이 완벽하게 잘못된 정책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한 발짝 물러서 보면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이런 갈등에는 혹시 제주사회가 외부에서 밀려드는 물결에 대응하는 관점이 다양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도 다양성이란 생태계에서도 외부충격을 완충하는 최선의 장치다. 이런 장점을 살려 새해에는 제주사회를 칭칭 감고 있는 갈등의 사슬을 끊자. 세계로 미래로 향하는 희망의 깃발을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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