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성 서귀포지사장·논설위원실장

민선 6기 취임 당시 '협치'를 내세웠던 원희룡 지사가 민선 7기 들어 3년차를 맞은 2020년 벽두에는 '소통'을 강조하고 나섰다.

원 지사는 이달 2일 열린 '2020년 제주도 신년인사회'에 참석, "올해 제주도정은 당면한 지역경제의 위기를 극복,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민생을 튼튼히 지키는데 최우선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 과정에서 여러 경제주체들과 여러 분야의 도민들과 더욱 소통하고 협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새해 벽두 소통·협력 다짐

원 지사는 또 같은 날 피자배달원 복장을 하고 더큰내일센터 교육생들에게 피자를 직접 배달하는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25일 더큰내일센터 토크콘서트에서 피자를 사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원 지사는 1982학년도 학력고사 전국 수석,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 수석 합격, 3선(16~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사무총장·최고위원 등을 지낸 걸출한 인물이다. 

이같이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자신감이 지나친 때문인지 원 지사는 재선을 거쳐 5년 7개월째 재임하는 동안 설화에 가까운 발언으로 자주 논란을 불러왔던 점과 비교하면 새해 들어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실제로 원 지사는 재임 중 지지자들조차 고개를 젓게 하는 말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27일 대구에서 열린 '아시아포럼 21' 정책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남자 박근혜'에 비유한 것이 대표적이다. 원 지사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잘 듣는 것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잘 안받아들이고 특정한 문제에서는 고집이 세다. 소수 측근에 둘러싸여 바깥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남자 박근혜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에서 야당 지지층에게 맞춤용 사이다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지난해 11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 후보자 시절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동영상에서 '친구 조국아, 이제 그만하자'라는 제목으로 "더 이상 나름 순수했던 우리 동시대의 386들 욕보이지 말고 부끄러운줄 알고 이쯤에서 그만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자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인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희룡아, 내 친구로서 욕 먹을 각오하고 한마디 하겠는데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우정의 이름으로 친구를 궁지로 모는데 눈치보다 기어이 숟가락 얹는 꼴처럼 우정에 반하는 추태는 없는거 같다"고 비판했다. 

이밖에도 원 지사는 5조원이 넘는 사업비가 투자되는 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에 대해 "제주도민 상당수가 우려한다면 허가를 안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가 개발사 대표로부터 "사업자는 봉이냐"는 공개적인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원 지사는 또 2020년도 예산안이 의결된 지난해 말 도의회 본회의에서 '도의원 10억원씩 배분'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사전에 도의회와 충분히 협의되지 않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관행적인 예산 배분을 폐지해야 한다는 당위성만큼은 도민들의 공감을 받았다.

하지만 인적 자원이 달리고 신항만 건설이나 제주하수처리시설 현대화, 광역환경시설 설립 등 각종 국책사업도 정부 지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제주도 입장에서 원 지사가 굳이 대통령과 각을 세울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예산뿐만 아니라 제주4·3특별법 개정이나 제도개선을 위한 제주특별법 개정 등 집권여당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 원 지사의 튀는 행보가 도민 이익에 부합하는지 걱정된다.

도민 이익 최우선 생각하길

제주도가 낳은 인재인 원 지사가 적절한 시기에 중앙정치에 복귀한다면 반대할 도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중앙정치 진출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도민만 바라보겠다"는 원 지사의 새해 약속이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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