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 봉성교회 목사·논설위원

독일의 축구대표팀 감독 요아힘 뢰브의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 2006년 지휘봉을 잡은 이래 월드컵 우승을 포함하여 좋은 성과를 얻었다. 통계수치로 볼 때에는 역대 최고성적이다. 그러나, 연전에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에게 일격을 당하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였으며, 그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백년 가까운 독일축구의 역사에서 열 번째 국가대표 감독으로 그는 등용되었다. 평균 수명이 10년으로 계산되니, 거의 해마다 경질하는 한국축구와는 다른 풍토라 할 수 있다. 더구나 프란츠 베켄바워, 베티 폭스, 에리히 리벡, 루디 푈러, 위르겐 클린스만으로 이어지는 유명선수 출신의 감독들이 짧게 재임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고난도의 책임을 잘 수행했다고 평가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하는 독일대표팀에게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축구협회의 지원도 바닥을 치고 있었다. 서귀포에 마련한 현지 숙소도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선수 가족들이 머무르는 호텔과 비교하기도 민망한 대우였다. 루디 푈러는 이제 막 현역에서 은퇴하였으며, 선수 시절에도 뛰어난 친화력으로 모든 선수들과 잘 통했다. 임시로 감독직을 맡은 것인데, 코치 자격증도 없는 상태였다. 원칙도 무시하는 사례는 이미 베켄바워에게 당분간 책임을 맡길 때와 비슷했다.      

앞서 책임을 맡았던 에리히 리벡은 해결사가 되지 못하였다. 그는 레버쿠젠 감독으로 UEFA컵 우승의 위업을 일구어냈다. 당시 차범근이 주공격수로 활약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대표팀을 추스르고 좋은 성적을 낸다는 것은 클럽팀과는 다른 지도력이 필요했다. 축구협회도 갈팡질팡 난맥상을 드러냈다.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리벡과 동시에 울리히 슈틸리케에게도 감독직을 제안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다행히 슈틸리케는 양보하였고, 수석코치로 만족해야 했다. 그는 근래에 한국 대표팀 감독을 몇 해 동안 역임하였다. 

예선에서도 고전하며 겨우 본선에 진출한 대표팀에게 팬들은 이미 충분히 실망한 상태였다. 푈러 감독은 클린스만 은퇴 이후 생겨난 공격수의 공백을 클로제를 기용하여 해결하려 하였다. 폴란드 출신으로 갑자기 재능을 인정받고 떠오른 경우인데, 독일 혈통을 고집하던 관례를 넘어선 것이다. 가나 출신으로 성장과정에서 독일로 이주한 아자모아도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프랑스, 영국에 비해 인종문제에서 개방적이지 못하던 독일 스포츠계가 새천년에 새로운 길을 택한 것이다. 

그 선택은 적중했다. 클로제는 이후 계속 월드컵에 출전하면서, 월드컵 최다 득점의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대신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득점왕으로 등극한 베른트 슈나이더를 대표팀에 어서 선발하라는 성화가 일었다. 감독의 평가는 달랐다. 공격력은 인정할 수 있으나, 수비담의 속도가 느리고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었다. 국내 리그에서는 통하지만, 국제 경기에서는 팀 전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슈나이더는 선발되어 제주도에 왔지만, 예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기용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서둘러 귀국해버렸다. 벤치에만 앉아 있기에는 불편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한국과의 준결승에서 수비불안의 문제는 오히려 한국팀의 짐이 되었다. 한 번 공을 놓친 상황이 바로 결승골로 연결되었다. 독일은 망외의 성과로 준우승을 성취하였고, 우승에 못지 않는 환대를 받으며 개선장군처럼 귀국하였다.   

현재 뢰브 감독은 선수를 판단하는 안목과 우수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지도력, 그리고 작전지휘의 능력에 이르기까지 소진되었다고 보인다. 그동안 역할을 충실히 감당한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달이 차면 이내 기울어간다. 한때 좋은 성적을 내던 요인이 이제는 발전을 가로막는 적폐로 작동한다면, 해결책은 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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