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형 취재2팀 차장

기우(杞憂).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의미다. 기우는 중국 기나라 사람의 근심을 뜻하는 낱말이다. 옛날 중국 기나라 사람 가운데 걱정이 많은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 남자가 가진 고민 가운데 가장 큰 고민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어떡하지'라는 것이었다. 남자는 이 걱정 때문에 겁이 나서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서 하늘과 땅이 꺼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고 나서야 안심하고 밖에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기우는 앞일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해 12월 27일 국회가 선거 연령을 만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올해 4월 15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주지역 고등학교 3학년 학생도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번 총선에서 새로 선거권을 갖는 2002년 4월 16일 이전에 출생한 제주지역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1700여명이다. 이들을 포함한 제주지역 만 18세 학생은 1996명 가량이다. 

교육계와 정치권 일부에서는 고등학생이 선거법 등을 제대로 몰라 선거 사범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학생이 선거법 등을 위반하는 것보다 정치인이 학교 현장을 찾아가 지지를 호소하면서 교육의 장소인 학교가 정치 장소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더 크다. 정치인이 유권자를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유권자도 정치인이 발표하는 공약을 듣고 판단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정치인이 무작정 학교에 찾아가 지지를 호소한다면 교사의 수업권,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받을 가능성이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와 교육부,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교육 현장이 정치판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어른은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들고 아이가 선거법을 제대로 몰라 선거사범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학생 유권자도 정치인의 공약이나 철학을 검증할 수 있도록 정치인이나 선거 후보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선거권을 가진 학생은 어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교복을 입은 민주시민이다. 학생이 공직선거법을 제대로 몰라 선거 사범이 될 것이란 우려는 어른의 기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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