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전 충남대학교 교수·논설위원

지역 주거민과 방문객 수가 가파르게 늘며 한라산의 자연환경 손상이 불가피한 듯 해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섬이라 육지의 면적이 제한되어 있고, 그 중 한라산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활동반경이 놀면서 자연환경의 잠식이 진행되었다. 약 50년 전 한라산의 높은 지역을 관통해 산남북을 연결하는 횡단도로가 대표적인 예다. 

1970년 전후로 제 1 횡단도로(516도로)와 백록담 반대쪽인 서쪽으로 제 2횡단도로(1100도로)가 개통되었다. 1972년부터 10년 간 적지 않은 액수의 통행료가 징수되어 많은 수입을 올렸다는 기록을 보면 이 도로들이 주민들에게 상당히 큰 편익을 제공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후적으로 보면 이런 편익이 도로개설과 포장을 위한 강제적 인력 동원, 벌목 및 환경훼손과 같은 넓게 본 비용이 정당화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지금은 넓고 잘 정비된 자동차 길이 제주도 전역에 걸쳐 이어져 있어 두 횡단도로가 제공하는 편익은 상대적으로 미미하지만 두 길은 여전히 식생이 울창한 한라산을 동서로 단절시키고 있다. 이렇게 야기하는 환경적 피해(또는 비용)는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두 도로의 경제적 정당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이 도로들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두 도로를 경제활동이나 생활편의의 중요한 수단으로 여기는 주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백록담 탐방 예약제를 통해 등반객 규모를 줄이는 일은 경제적 수명을 다한 횡단도로와 달리 주민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일이 아니다. 이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등반객들로 인해 발생하는 자연 훼손과 오염을 줄일 수 있는 뚜렷한 효과가 기대된다. 

대부분 정해진 길로 산을 오르내리는 발길이 뭐 그리 큰 피해를 주느냐 반문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2009년 말까지 15년 간 폐쇄되어 인적이 큲겼던 산남의 돈내코 탐방로가 개방된 지 몇 년 후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가보았다. 초목이 왕성히 자라 길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무색하게 쉽게 눈에 띄는 길을 따라 정상 가까이까지 갈 수 있었다. 높은 강우량, 적당한 기온 등의 조건으로 식물이 잘 자랄 것 같은 조건을 갖춘 한라산 남면에서도 인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끊임없는 발길로 산길이 다져지고 드러난 나무뿌리들이 손상된 모습은 서울 인근 북한산처럼 사람이 많이 찾는 산을 가보면 쉽게 볼 수 있다. 

올 해 초 처음으로 지리산을 올랐는데 넓고 깊은 것이 한라산과는 다른 느낌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산이 넓고 주봉인 천왕봉 외에도 직선거리로 16km가량 떨어진 곳에 제 2봉이 있어 등반객 발길이 분산되고 있다. 설악산도 비슷하다. 이에 비해 한라산은 아무 곳에서 출발해도 행선지가 백록담으로 집중된다. 당연히 화산 분출물로 형성된 정상 주위부가 취약한 정상 주변 사람 통행 밀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자연훼손을 막을 도리가 없다. 

식생 자원의 보고 한라산의 본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탐방객 규모를 제한하는 것 외에 더 나은 방법이 없어 보인다. 당국은 한라산 환경의 특성과 취약성을 잘 홍보하여 국내 다른 곳에는 없는 제도로 접근을 제한한다는 불평이 나오는 것을 예방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성판악 등반로 이용자 수를 제한하고 제주시 가까운 곳에 주차장을 만들어 셔틀버스를 운행한다는 계획은 바람직해 보인다. 그간 성판악 주변 좁은 횡단도로가 사실상 주차장이 되었던 것을 원천적으로 개선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번 제도가 안착하면 사실상 기능을 다한 두 횡단 도로를 더 자연 친화적으로 활용하고, 궁극적으로 자연으로 돌려주는 방법도 고민해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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