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복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예술세계에서 최고 정상의 위치를 밟기까지 예술가들이 벌이는 각고의 노력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절하고 치열하다. 이른바 명창이 되거나 명필이란 칭호를 얻은 이들의 행적이란 엄중하다. 이들의 수련방식은 대체로 일정 기간 한 스승에게서 수업을 쌓은 뒤,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최종 담금질을 시도하기도 한다. 실례로 한국의 전통 판소리 창법 수련의 경우, 득음(得音)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벌이는 '홀로 공들임[獨功]'의 시간, 곧 토굴독공과 폭포독공 따위가 바로 그런 부류이다. 

한편 서화의 경우에도 매한가지로서, 학습자는 보통 특정 집단이나 인사 밑에서 직접 지도를 받거나 아니면 간접적으로 그 서체를 익히기 위해서 오래도록 임서(臨書)의 과정을 밟는다. 그래서 최종에는 자신 만의 독특한 서체를 개발해 그 결과를 작품을 통해 선보인다. 스승의 업적에 자신의 개성이 추가되다 보면 의당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런 정황에서 나온 말이 이른바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으로서, 바로 제자의 예술 경지가 스승을 능가함이란 뜻의 찬사이다.   
     
중국 명말청초(明末淸初) 때 유명한 화가였던 석도(石濤, 1636~1799)는 그림을 논한 글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 … 그림에는 남종화와 북종화가 있고, 글씨에는 왕희지(王羲之)와 왕헌지(王獻之)가 있다. 장융(張融)이 이런 말을 했다. '신이 이왕(二王)의 법을 갖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왕이 신의 법을 갖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합니다.'라고. 그렇다면 지금 나더러 남종화 · 북종화 중 어느 기법을 따르느냐를 묻는데, 그럼 내가 그 종(宗)을 따르겠소, 아니면 그 종이 나를 따르겠소?" 한바탕 배를 움켜쥐고 크게 웃더니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저 스스로 내 법을 쓸 뿐이라오.[我自用我法]"

자신의 기법을 당당하게 내세우면서 아울러 현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태가 참으로 솔직하면서도 대견스럽다. 당대 중국화단에서 최고 정상의 지위를 누렸던 서화가의 진면목이 이 한 마디의 말로 대변되는 듯하다. 

한편 이와 유사한 표현이 조선 중기 선조 광해군 때의 문신인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1618)의 작품에서도 드러남은 자못 흥미롭다. 그의 오언시 '관직이 파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聞罷官作]'란 시에 보면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예교(禮敎)가 어찌 나의 자유를 구속하리오(禮敎寧拘放), / 허망한 세상살이 다만 정(情)에 맡길 뿐(浮沈只任情). / 그대는 모름지기 그대의 법을 따르시오(君須用君法). / 나는 절로 내 방식대로의 삶을 살리라(吾自達吾生)."
  
그대는 그대의 법을 쓰면 되고, 자신은 자신의 법을 쓰겠노라고 함은 다름 아닌 자신감의 발로이다. 이런 표현법이야말로 일상이건 예술세계에서건 영혼이 자유로운 사상가에게나 두루 통용되는 처세술일 법하다. 

그런데 간혹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이와는 다른 모습을 마주할 때도 있다. 예컨대 큰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가 자신의 소감으로 특히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표현을 힘주어 강조함 따위이다. 이른바 자신의 기량이 3이라면 나머지 7은 순전히 행운이었다란 식이다. 아무래도 속마음과는 달리 겸사(謙辭)의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이는데, '과공비례(過恭非禮, 공손함이 지나치면 예가 아니다.)'란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차라리 석도(石濤)란 인물처럼 "저는 그저 제 나름의 방법을 쓸 뿐입니다"란 의미로 '아자용아법(我自用我法)'을 당당하게 내세울 만도 하지 않은가.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