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새해 메시지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저는 '힘내라'는 말보다 '사랑해'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남극에서 왔다는 아직은 연습생 신분이라는 10대 펭귄의 말 한마디에 코 끝이 찡해진다. 따뜻한 맛이 없는, 어딘지 단호한 어조지만 공감이 간다.

펭수 신드롬은 그래서 더 단단하고 뜨겁다. 행여 유행에 뒤지지는 않을까 올해 펭수가 어떤 덕담을 했는지 찾아봤다. "그냥 눈치 보지 마시고 본인이 원하시는 대로 살면 됩니다. 새해에도 참치길(펭수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걸으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역시 담백하다.

△'남처럼' '예전처럼'을 버리고

믿거나 말거나 '돈을 주고 산다'는 말까지 나올 만큼 덕담은 매년 그 영향력을 더해간다. 

2020년 달력 첫 장을 펼치며 이미 '건강' '행복' '희망' 같은 단어가 넘치도록 쏟아졌지만 여전히 아프고 힘들다. 설 연휴라고 쉬는 날 빨간 표시를 해뒀지만 어딘지 불편한 느낌이다.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새뱃돈'을 챙기는 가장의 마음은 마냥 묵직하고, 일을 찾지 못한 청춘들은 눈 둘 곳을 찾지 못한다. 가계부 사정이 나빠지는 것이 살림을 제대로 못한 때문인가 고민은 커지는데 '남처럼' '예전처럼'을 버리지 못하는 상황이 입에 쓰다.

함께 해도 넘기 힘든 고비는 해를 넘기고 그 골이 더 깊어졌다. 누구 탓을 하기에는 각자의 처지가 극명하게 달라지고, 생각의 거리도 벌어졌다. 굳이 펭수화법을 끌어쓰지 않더라도 올해 덕담은 자신에게 솔직하고 서로에게 힘을 주는 응원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부자 되세요"라는 말에 심장이 뛰었던 적이 있었다. '안녕하신가요'라는 주문도 있었다. 올해는 거기에 보태 '고민한다고 고민이 없어지나요. 따지지 말고 가슴을 따라 살아요'라는 펭수식 공감형 어조를 옮겨본다.

주어지는 상황을 기꺼이 맞는 청춘은 빛날 자격이 있고, 스스로에게 냉정하고 손해를 감수할 만큼 어리석은 일을 해봐야 나이가 들어서도 힘을 쓸 수 있다. '라떼는 말이야'는 꼰대식 표현을 비꼬는 말이기는 하지만 거꾸로 라떼를 먹어본 '경험'을 해봐야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가슴을 따르는'용기까지 챙긴다면 최고 중 최고겠지만 '최선'만 다해도 충분하다.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해 떨어져 어두운 길/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중) 가면 된다. 시인은 해방과 통일의 길을 노래했지만 오늘, 제주를 사는 우리는 상생과 공존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손을 맞잡으면 된다.

△응원의 '영차'를 듣다

조금 욕심을 낸다면 '처음부터' 보다는 '지금부터'다. 대부분 처음은 서툴다. 잘 하기도 어렵다. 문제를 알고 원인을 찾으면 성장하거나 발전할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접근 방법만 바꿔도 살만해진다.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윤동주 '주머니')해 진다.

현덕식 작가의 '뚜벅이'는 특별한 누구가 아닌 평범한 오늘 나다. 말쑥하게 잘 나지도, 한 눈에 시선을 가로챌 만큼 멋지지도 않다. 투박하리만큼 각이 졌지만 모서리가 날카롭지 않아 조각조각 잘 맞물린다. 

청년으로 오늘을 사는 작가의 '나만 믿어'는 세월호 사고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담아 작업한 작품이다. 그 것을 '삶이 힘든' 현재의 시선을 통해 보면 다른 메시지가 보인다. 한 배에 탄 사람들이 노 하나만 믿고 움직이면 방향을 잡기도 어렵고 제대로 속도를 내기도 힘들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손을 보태면 사정은 달라진다. 서로를 믿고 함께 가자는 응원의 '영차'가 들린다.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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