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경 제주국제대학교 교수·융복합관광센터장·논설위원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사막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미래기술 혁신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 지난 10일 세계 최대 IT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ics Show, 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20'가 4일간의 열전을 마쳤다. 

'전기자동차'와 '폴더블 디바이스'는 눈앞의 현실이 되었고,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이 5G 네트워크를 통해 일상화되는 경험이 펼쳐졌으며, 친환경과 고령화 시대 속에 글로벌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이제 스마트 시티는 더 이상 실험도시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과 통상마찰 속에 한때 CES의 맹주를 자처하며, 기조연설과 주요 부스를 장악했던 중국이 주춤거린 반면,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의 퍼스트 무버를 향한 도전이 돋보였다. 

주최 측에 따르면 올해 4일간의 행사기간 동안 161개 국가에서 4500여개 업체, 약 18만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390여개 기업이 참가했는데, 일본보다 5배가 많았고, 한국인 공식등록자만도 1만 명이 넘었다. 비단 IT분야 종사자만이 아니라 금융, 유통, 화학, 섬유, 여행사 등 다양한 산업에서 그리고 협회, 기관과 정부부처의 방문객도 다수였다. 누군가는 신제품과 신기술을 홍보하고, 누군가는 2020년 정책과 마케팅 전략을 구상하고, 누군가는 글로벌 혁신사례를 보며 '국내의 낡은 규제'에 쓴 소리도 했다. 수만 명이 동시에 아침식사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기술혁신의 담론을 얘기할 수 있는 건 개최지가 라스베이거스이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는 1930년대 미국 경제공항 때 후버댐 건설을 위해 노동자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형성된 도시다. 노동자들을 위해 도박이나 쇼를 하는 극장이 하나 둘씩 생겨났고, 그 이후 대형 테마 호텔도 생기고, 도박이 합법화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호텔, 클럽, 레스토랑, 스파와 수영장, 쇼핑몰, 그리고 각종 쇼와 뮤지컬 공연으로 라스베이거스는 칠흑 같은 어둠 너머로 화려한 불빛이 장관을 이루는 사막의 오아시스, 세계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도시로 발전하였다.

특히 라스베이거스 공항은 슬롯머신이 있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공항으로 호텔 체크인을 하던, 객실로 올라가던, 슬롯머신에 둘러쌓여 동전 떨어지는 소리에 이끌려 여행객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가는 '카지노 도시'고, '가족단위 밤의 도시'였다. 하지만 다른 국가, 미국 내 다른 도시들과의 카지노산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라스베이거스의 명성도 시들해졌다. 새로운 돌파구는 '낮에도 비즈니스 방문객이 찾는 국제행사 주최지'로의 탈바꿈이었다.

이제 라스베이거스는 카지노로 해서 버는 돈은 30%에 불과하고, 나머지 70%는 컨벤션 산업에서 나온다. 2018년에 25년 연속 미국 최고의 컨벤션도시로 선정되었다. 2018년 한 해에만 48건의 대형 컨벤션을 유치했고, 크고 작은 회의만 2만4천 건, 2021년이면 60만㎡, 축구장 100개 정도의 전시공간이 확보되며, 모노레일이나 셔틀 같은 대중교통으로 촘촘히 연결되는 20만 명을 수용하는 호텔객실도 강점이다.

전체 방문객 4200만 명 중에서 무려 15%가 비즈니스 출장자로 비싼 방값은 회사가 지불하고, 출장자가 중간 중간 쓰는 여행경비도 만만치 않다. 일과 관광의 완벽한 조합 속에 라스베이거스에는 7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었고, 컨벤션 산업의 직접적인 경제효과만 10조가 넘어섰다.  

1996년 개봉된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는 실직한 알콜중독 극작가, 니콜라스 케이지의 고단한 사랑과 삶에 관한 얘기지만, 2020년 라스베이거스에는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는 도시의 고단함은 더 이상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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