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영삼 전 UNITAR 제주국제연수센터 소장·논설위원

제주는 예로부터 3다(바람 돌 여자)와 3무(대문 도둑 거지)로 유명하다. 여기서 3무는 '안전'과 '평화'의 이미지를 둘 다 지니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제주의 이미지가 퇴색되고 있다. 전 남편 살해, 시신 훼손 및 은닉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고유정의 엽기적 살인사건의 발생지가 제주다. 또한 10년 전에 일어난 택시기사 강간사건 재판으로 재조명 받는 곳도 제주고, 심지어는 집단자살 장소로도 등장하고 있다.

평화롭던 제주도가 강력범죄의 온상으로 비춰질까 큰 걱정이다. 실제로 제주에서 살아가다 보면 육지보다는 확연히 안전하고 조용하다는 느낌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섬뜩한 살인사건이 연달아 언론에 보도되다 보니, 이제 주민들에게도 불안감이 스며 들고 있다. 제주의 강력사건 발생 수가 날로 증가하고 또 흉포화 되고 있다. 관광지다 보니 전국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 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범인 중 상당수가 육지 출신인데 이들은 처음부터 제주를 목표로 삼아 원정범죄를 저지르고 있어 제주도민으로서는 억울하기도 하다.

치안 확보는 인권 보장의 핵심이다. 국가의 고문과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을 강조하던 전통적 인권과 안보의 개념이 대인지뢰금지조약 채택을 계기로 하여 '인간안보'의 개념으로까지 확대 되었다. 즉 범죄로부터 자유롭고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개인적 안보 권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사회 치안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에 대해 정부가 인권보장의 차원에서 책임지고 진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주민의 안전에 일차적 책임을 지는 기관은 경찰이다. 그런데 지난 3년간 전국 16개 시도의 4대 범죄 (살인 강도 절도 폭력) 발생률을 비교하면 제주도가 가장 높고, 외근 형사 1인당 4대 범죄 담당 건 수도 전국 평균(63건) 보다 훨씬 높다(81건).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형사의 범인 검거율은 전국 평균보다 무려 31% 높다. 다시 말하면, 제주경찰은 그 수가 태부족하지만 헌신적인 임무 수행 덕분에 이 정도의 안전이나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검찰과 경찰간 수사권 기소권 분리에 관한 오래된 논쟁이 마무리 되어 경찰의 권한과 역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시민이나 도민의 입장으로서는 그러한 기관간 권한 조정 문제보다는 일상생활에 있어 경찰의 주민보호 기능이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관심사다. 치안 불안으로 인해 평소의 생활이 지장 받지 않기를, 그리고 자녀가 마음 놓고 학교와 유치원을 다녀 올 수 있기를, 그리고 관광객들이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제주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시 말해 나의 생활 속에 보호막이 되어 주는 든든한 경찰상을 바라고 있다.

제주도가 조용하고 평화롭다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범죄가 없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찰이 새로운 다짐으로 멋진 전통을 만들어 가야 한다.  도민을 사랑하는 경찰, 그리고 도민이 전적으로 신뢰하는 경찰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제주도 치안이 제대로 확보 되기 위해서는 경찰력의 증원이 시급한 과제다. 자치경찰 지구대도 힘을 보태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그런데 "10명이 지켜도 도둑 한 명 막을 수 없다" 했듯 경찰력이 아무리 많아도 범죄의 완전 예방은 불가능하다. 범죄 성격마저도 더욱 지능화 고도화 되고 있어 미제사건이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제주처럼 땅은 넓고 인구가 적은 섬의 경우, 외딴 구석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경찰이 다 감당하기는 당연 무리다. 고유정 사건이 바로 그러한 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제주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치안수요가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경찰병력을 더 쪼개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무제한 증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우리 동네는 우리 이웃이 함께 지키는 것이 답이다. 서양 국가 내 주택가 골목에는 큰 눈동자가 그려진 경고판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조심스레 관찰하고 경찰에 신고하라는 의미다. 주민들의 신고율이 꽤 높다 한다. 경찰력이 단단한 선진사회도 어쩔 수 없이 치안을 위해서는 주민들의 협조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성공의 관건은 시민들의 신고정신이다.

몇 해 전 서구 어느 나라에서 들은 얘기다. 집에 찾아 온 친구가 함께 술을 마신 후 자기 차를 몰고 집에 가겠다고 고집했단다. 집주인 친구가 택시를 불러 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였고, 결국은 운전대를 잡고 떠났단다. 다음날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그 늦은 밤에 아무도 본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경찰이 알고 따라 왔고 결국 음주 운전으로 큰 처벌을 받았단다. 그러자 집주인 친구가 실토하기를 자기 자신이 경찰에 신고했단다.

치안유지는 결국 경찰과 주민이 서로간에 얼마나 믿고 어떻게 돕느냐에 달려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 경찰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숫자는 대수가 아니고, 경찰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 주민들을 성심 성의껏 돕고 치안을 지키면서 법 집행에는 단호함을 유지해야 한다. 불법과 범죄에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협조 자세다. 내 마을은 내가 지킨다는 원칙을 지켜 나가야 한다. 헌신적인 경찰의 자세와 시민들의 신고정신의 조합으로 안전한 제주, 평화로운 제주를 지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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