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제주국제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논설위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4관왕을 거머쥐었다. 특히 작품상은 90년이 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처음 수상하는 외국어 영화라고 하니 기쁘고 자랑스럽다. 

잘 만든 영화인 이유도 있겠지만, 영화산업 전반에서도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이전의 방식을 넘어서는 평가 경향이 생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넘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장벽에 도전하며, 언젠가부터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거론되고 수상해나가더니 결국 오늘의 결과를 성취해 낸 팀웤은 감동적이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제작자의 수상소감처럼 그야말로 한국영화와 글로벌 영화계의 파괴적 혁신이라 할 수 있다.

'파괴적 혁신'은 지난달 타계한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가 사용한 용어이다. 혁신적인 상품으로 성공한 기업들은 자신의 성과에 몰입해 시장을 유지하다가 단순하고 저렴한 상품으로 기존 상식을 뒤엎어 진입하는 새로운 혁신기업에 밀리게 된다. 최초에는 혁신적이었으나, 그 방법 그대로 시장을 지켜내느라 변화가 어려워지고 딜레마에 빠지게 되면서 미흡한 대응으로 도태된다는 것이다.

한편, 어느 환경 어느 시장에서나 신선한 혁신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아이들의 뽀통령이라는 뽀로로를 베끼다시피한 '펭수'라는 캐릭터는 어린이보다 성인들을 위로하면서 뽀로로 이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놓고 원조의 아류임을 밝히고 있는데도 짝퉁이라고 시비 걸지 않는다. 교육방송에서 만들어낸 캐릭터임에도 별로 공손함 없이 대상이 누구이든 할 말 다하는 컨셉은 눈치보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대리만족을 준다. 

최근 갑자기 트롯계에 등장한 '유산슬'이라는 이름의 신인가수에게는 그가 유재석이라며 아는 척 하지 않고, 트롯을 부를 때 만큼은 MC나 개그맨이 아닌 엄연한 가수로 인정해준다. 정상의 자리에 있음에도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존경스럽다. 지난 몇 년간 비슷해 보였지만, 어쩌면 그는 하던 대로의 방식이 아닌 언제나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기에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마돈나가 대단한 것도 그녀의 팬들이 언제나 10-20대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가수와 팬들은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잊혀지기 마련인데, 자신보다 계속 어려지는 팬들을 타겟으로 지루하지 않은 멋진 쇼를 펼친다. 새로운 세대가 팬의 자리에 올 때마다 그녀는 과거의 자신을 계속 버려가며 팬들이 원하는 혁신을 늘상 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을 무너뜨리고 완전히 다른 것으로 인식시키려는 노력이 눈에 많이 띈다. 

특히 기업이 아닌 지역에서 강한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미 제주에는 파괴적 혁신을 일으킨 브랜드가 있다. 1990년대 중반, 공기업이라는 한계를 넘어 생수를 만들어 팔겠다는 의지로 시작해서 여전히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제주삼다수'가 그렇다. 
물론 공기업임에도 시장진입 초기에 농심이라는 유통 전문기업과의 협업을 결정한 파괴적 순간이 있었기에 라면 판매망이 열린 전국 어디서나 제품을 알리는 혁신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친환경 이미지로 경쟁우위를 지킬 수 있었지만 최근 출시한 오리온의 '제주용암수'처럼 어느 순간 새로운 컨셉의 생수가 등장하거나 스스로 혁신적인 생수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손자병법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전략이라도 오래 끌면 패한다고 했다. 파괴적 혁신을 통해 시장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다시 새로운 혁신이 수반되지 않으면 바로 사라지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제주삼다수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길은 결국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다. 파괴적 혁신은 필연적이나, 혁신에 밀릴지 아니면 혁신을 이루어낼지는 스스로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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