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챕터 대표·논설위원

기본소득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경제활동 과실의 소수 기업 및 계층 편중, 거기다 주요국가의 오랜 저금리 기조와 맞물린 자본소득 불평등 문제가 심화되고 산업 구조 개편이 가속화되면서 관심이 다시 불 붙고 있다. 기본소득은 재산이나 소득 수준, 노동 및 고용 여부 등과 무관하게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금전을 지급하는 배당 또는 수당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몇몇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실험적 수준의 기본소득 정책이 이미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만 24세 경기도민에게 소득과 무관하게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100만원 규모의 '청년배당', 농가를 대상으로 한 전남 해남군의 60만원 상당의 '농민수당' 제도가 그렇다. 이 제도들의 경우 특정 세대나 직업군에 지급되는 형태이므로 이른바 보편적 기본소득이 아닌 부분 기본소득 제도로 구분될 성질의 것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지금은 경선 포기를 선언하였지만 초기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전에서 주목을 끈 앤드루 양이 기본소득제를 주요 정책 아젠다로 제시한 바 있다. 모든 미국 성인에게 월 1천달러의 '자유배당금'을 지급하여 빈곤 문제 해소를 위한 주요 동력으로 삼겠다는 게 요지였다. 양은 사퇴하였지만 여전히 경선 트레일을 돌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버니 샌더스, 피트 부티지지 등 진보 노선의 후보군은 기본소득제 관련 논의를 아직 접지는 않고 있다.

기본소득제는 재정, 복지, 고용, 노동 등 국가, 사회, 시민의 제도운용 및 생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전환적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므로 도입에 관한 찬반 양론이 뜨겁다. 우선 찬성 측은 기본소득이 자본주의와 기술 진보가 파생하는 불평등, 사회 불안정 문제에 해법이 될 수 있다 주장한다. 기존의 사회보장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 등을 지원하여 노동과 고용의 격변에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일 수 있다는 말이다. 찬성 측은 또 기본소득제가 실업수당이나 기초수당 등 기존의 조건부 사회보장제도가 야기하는 복지함정 문제에 대안이 될 수도 있고 행정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논거도 제시한다.

반대 측의 논거는 무엇보다 막대한 재원 부담과 실질적 효과에 대한 의문과 관련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월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연간 300조원이 넘는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현재 사회부조 방식의 현금성 급여액 총규모인 17조원을 차감하더라도 여전히 288조원에 이른다. 2019년 일자리 대책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복지예산이 161조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로 막대한 규모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 기본소득제 도입에 따른 사회부조 수급액 감소 피해는 기존 복지 수혜자들에게 가장 크게 미치고, 노동자의 근로 의욕 저하와 소득 분배 악화로 오히려 제도 도입 의도와는 다른 부정적 결과를 나을 것이라는 OECD의 연구결과도 있다.

이처럼 거리가 먼 찬반 양론의 스펙트럼에서 잠시 벗어나 2019년 공개된 미국의 기본소득제 관련 최신 연구결과를 살펴보자. 루즈벨트연구소는 월 500달러의 기본소득을 순전히 연방 채무로 조달하여 미국의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지급하였을 때 소비증가를 촉발하여 2027년까지 미국의 GDP가 약 6.8% 상승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 좀 더 정교한 동적 모델링 기법을 활용한 와튼 스쿨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양상이 확연히 다르게 전개된다. 성인 대상의 월 500달러 기본소득제를 2020년 전면 실시할 경우 2027년에 이르러 연방정부부채는 2027년에 이르러 63.5% 넘게 폭증하고 GDP는 6.1% 추락한다는 것이다. 국내총생산이 격감하면서 조세수입 또한 떨어져 사회보장세입 역시 같은 기간 7.1% 하락할 것이라는 지적도 따른다.

결국 기본소득제의 도입은 의지와 상상력의 문제라는 찬성 측의 입장과 재원조달 방법 및 실증적 효과에 고민점을 두는 반대 측의 입장이 뜨거운 논쟁의 장을 이어가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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