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원장

지난 22일은 아동 성폭력 추방의 날이었다. 2006년 2월 18일, 서울 용산의 11세 아동이 집 앞 비디오 대여점에 갔다가 동네 신발 가게 남성에게 유인되어 성폭행 당하고 끔찍하게 살해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가족부가 2007년부터 2월 22일을 '아동성폭력 추방의 날'로 지정했다. 용산 아동 성폭력 사건은 온 국민을 경악케 했었지만 이후에도 조두순, 김길태, 나주 초등생 성폭력 사건 등 아동 성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의뢰해 2011~2017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신상정보등록자(성폭력처벌법 및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으로 유죄판결 확정자나 공개명령 선고자) 추세를 분석한 결과, 19세 미만 대상 성범죄자(강간, 강제추행, 유사강간, 성매매 강요, 성매매 알선) 수는 2011년 1666명에서 2017년 2678명으로 증가했다. 이들에 의한 피해자 수는 2011년 2156명에서 2017년 3484명으로 증가했고, 동 기간 총 2만1414명의 피해자 중 13세 미만 아동이 5326명(24.9%)으로 약 4명 중 1명으로 드러났다. 

앞의 통계에 아동 성학대, 음란물 제작 범죄까지 더하면 2017년 신상정보등록자 통계상의 피해자 수는 4201명으로 하루 평균 11.5명꼴이었다. 전문가들은 성범죄 신고율을 10% 미만으로 추정하는데, 위 통계가 판결 완료된 통계임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 아동·청소년 수는 훨씬 많다고 짐작할 수 있다. 

아동 성범죄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어려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강제적으로 유발하는 반인권적, 반인륜적 범죄로서 결단코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98.4%가 남성, 피해자의 95.4%가 여성이라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힘의 구도를 여실히 말해 준다.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엄중처벌의 탄원 요구가 높지만 처벌은 매우 미약하다.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2017년 신상정보등록자 중 50.8%가 최종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고, 33.7%만이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최종심 징역형의 평균 형량은 강간 5년 2월, 강제추행 2년 6월, 성매매 강요 2년 11월, 성매매 알선 2년 10월, 성매수 1년 7월, 음란물 제작 등 2년, 아동 성학대 위반 1년 4개월로 도합 평균 3년 6월(43.8개월)이었다. 즉 범죄자 2명중 1명은 처벌 유예되고, 징역형의 경우도 평균 3년 반 정도면 풀려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법조계에서조차 아동·청소년 성범죄의 트렌드는 '무죄'라는 말이 나올까 싶다. 

인권을 중시하는 유럽에서도 아동 성폭력에 대해서만큼은 무관용(no tolerance) 원칙을 고수한다. 프랑스에서는 강간 피해자가 15세 미만인 경우 최소 20년의 징역 양형을 못 박았고, 스위스에서는 2004년 아동 성폭행범에게 예외 없이 종신형을 선고하는 법안이 통과됐으며, 미국 플로리다주의 경우 2005년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 하한을 징역 25년으로 높이고, 출소 후에도 평생 전자팔찌를 채워 집중 감시하도록 한다. 처벌의 상한선이 아니라 하한선의 형량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범죄가 용인되어서는 안 되지만 특히 아동·청소년 성범죄는 원천적 차단 및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되어야만 한다. 강력한 처벌과 함께, 전자발찌, 취업 제한, 예방교육 등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수사, 집행, 예방에 관련한 공권력의 전문성이 향상되어야 한다. 어떠한 처벌과 전문적 도움으로도 피해 아동을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기는 어려울 테지만, 국가와 성인들이 적어도 책임 있는 보호를 하겠다는 경각심과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아동성폭력 추방의 날을 계기로 이러한 실천 의지를 다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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