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미 취재1팀장·부국장

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가장 큰 기억은 '역사'다. 봉준호 감독 '기생충'이 101년 한국 영화 역사뿐만 아니라 92년 오스카 역사도 새로 썼다. '자막'이라는 쉽게 넘지 못했던 1인치 장벽을 넘고 오스카의 오랜 전통을 딛고 최고 권위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총 4개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기생충'에 쏟아진 찬사와 관심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 벌어진' 놀람과 기쁨으로 정리된다. 봉준호 감독의 소감 역시 전 세계에 회자 됐을 만큼 화제를 모았다. 그의, 그리고 영화를 통해 전하려 했던 '목소리'를 들은 결과다.

"서로가 서로를 지원하고"

'기생충'에 밀려 미쳐 챙기지 못했던 목소리들도 깊은 감명으로 남았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은 '인류애'라는 목소리를 전했다. 호아킨 피닉스는 무대에 올라 "목소리를 통해서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을 대변해줄 수 있다"는 의미를 강조했다. 또 "서로가 서로를 지원하고, 과거의 실수를 통해 서로를 무시하기보다는 교육을 하고 다시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게 바로 인류애라고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더했다.

역시 '조커'로 음악상을 수상한 힐더 구드나도티르 음악감독도 '목소리'를 냈다. 아이슬란드의 첫 아카데미 수상자라는 영광에 앞서 "소녀들과 여성들, 딸들에게 말하고 싶다. 꼭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 우리들은 당신들의 목소리 듣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말로 여전히 불평등하고 젠더폭력의 희생자인 '여성'을 상기했다.

코로나19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국내 확진자가 나온 지 한달이 넘어섰고, 지난주말 제주에서도 확진자가 나오면서 일생 생활 곳곳이 마비 상태가 됐다. 경기에 민감한 제주 골목상권은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듯한 속도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코로나19 전파 시작점이 '중국'이란 것에서 비롯된 혐오 여론은 마른 풀에 불이 붙은 것 마냥 번졌고 또 커졌다.

하나같이 힘든 상황에 주변을 볼 여력 따위는 계산에 들지도 못한다. 삭막하다 못해 퍼석거리는 일상은 '실명'이라는 전염병이 번진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생각하게 한다. 1998년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전염병이란 소재를 통해 인간성의 근원적인 본질에서 가치와 존재를 살피고, 인간 사회를 조직화한 정치 권력 구조 등을 비판한다. 그 안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주인공이 상황을 인지하고 눈 먼 이들의 목소리따라 움직인다. 그를 통해 고통을 나누고 의지한다.

'착한' 공동체를 바람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아픔을 나누려고 '착한 건물주'가 나섰다. 남대문시장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가장 많은 확진환자 발생으로 도시 기능이 멈출 위기에 처한 대구·경북 지역으로 이어졌다.

전주시는 한옥마을과 전주시장 등 전통시장과 상점가 건물주들의 임대료 인하 협약을 유도하고 있다. 경기둔화 장기화에 코로나 19로 인한 매출감소까지 겹치며 영세 소상공인들이 힘들어지면 결국 상권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한 결과다. 경기 수원·김포시, 광주, 부산 등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제주도가 선제적으로 특별경영안정자금을 투입하는 등 관광산업 위축과 골목상권 붕괴를 막겠다고 나섰고, 이미 1000건이 넘는 상담이 진행됐다. 당장 급한 불이라도 꺼야겠다는 절박함은 가시지 않고 있다. 모두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적어도 우선 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목소리'를 내라는 요구는 살펴 듣겠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누구 소리가 큰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훈장처럼 사용하면 권력이 된다. 3차산업 의존도가 높은 제주 산업 구조와 열악한 고용시장을 감안하면 골목과 시장을 지키지 않으면 돈 되는 상가도 없고, 1차산물 수급조절도 힘들어진다.

어떤 절망이라도 서로 의지하며 돕는 연대의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우리를 버티게 한다. 제주의 수눌음은 가장 어렵고 힘든 이웃을 우선했다. 제주에서도 코로나19를 버티게 할 '착한'바람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