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장·논설위원

며칠 전 미국에서 패션스쿨을 졸업하고 캐나다에서 성공적인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65세가 되자 은퇴하신 한 캐나다 교포의 글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는데 정작 은퇴하고 나니 캐나다에서도 시니어로 살기가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안 되어 우울하고 슬프다고 하였다.

생활과 관계된 시설들이 자동차를 타야만 갈 수 있어, 이런 시설들이 가깝게 있는 큰길 근처의 서민용 아파트로 이사하였다고 한다. 모란, 작약, 장미, 목련 등 철따라 피던 정원을 뒤로 하고 콘도(한국식 아파트)에 들어 왔는데 그나마 베란다에 화분을 둘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캐나다에서는 국적자이거나 영주권자인 경우 정부에서 노인기본연금을 주는데 최고한도액이 한 달 55만 원 정도 되며, 이주민은 40년을 살아야 그 정도 받을 수 있고, 이 교포처럼 25년 산 영주권자는 21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저소득층은 노인기본연금과 보조금 합쳐 최고한도액이 136만원인데 별도 수입이 있으면 차감하여 실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최고 81만원이란다.

서민용아파트 임대료가 방 하나에 거실, 부엌, 욕실이 달려있을 경우 한 달에 1800 달러이고 방이 두 개면 2000달러여서 저축이 없는 사람들은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고, 콘도관리비가 월 1000 달러에 주택세가 연 3000달러라고 하니 집이 있는 사람들도  저축이 없으면 역모기지로 살아간다고 하였다. 정부보조금 임대아파트는 입주까지 10년을 기다려야 한다니 엄감생심(嚴勘生心)이다. 핸드폰 사용료가 8기가에 82~100달러이며, 지하철이나 버스, 심지어 시니어 교육프로그램도 무료가 아니며, 치매 환자들을 도와주는 대이캐어(daycare)도 없다고 한다. 

시에서 받는 일반 혜택은 전혀 없고 노인정도 20만 인구에 딱 두 군데여서 자동차가 없으면 찾아가기도 어렵다고 한다. 겨울철이 되면 시니어들이 모여 놀 곳이 없어, 염치없지만 맥도널드나 백화점 입구 소파에서 눈총 받으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의료 서비스나 1년에 한 번 받는 시력검사, 예방주사(독감, 폐렴, 대상포진), 건강검진은 무료이나, 약값은 개인지불이고, MRI나 CT, 암검사를 받으려면 6~12개월 기다려야 하고 전문의의 상담을 받으려고 하여도 3~6개월 기다려야 한단다.

이 교포는 그러면서 '복지천국으로 알려진 캐나다에 사는 시니어의 실상은 녹녹치 않다. 한국에 사시는 시니어들만 힘든 게 아니고, 한국에만 빈곤층이 많은 것도 아니다. 세계 어느 국가에 가보더라도 복지국가인 캐나다처럼 빈민도 있고 거지도 있으며, 힘없고 돈 없는 퇴직한 노인들이 길거리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도 흔히 보게 된다.'고 하였다.

흔히 '캐나다는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교포의 글을 읽노라니 과연 캐나다가 천국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캐나다에서는 지금보다 낫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극빈층은 극빈층대로, 차상위(次上位) 그룹은 차상위 그룹대로 더 어렵게 살겠다고 여겨졌다. 더구나 의료문제로 접근해 보면, 만일 우리나라에서 전문의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3 개월을 기다리라고 하든가, 암 검사를 받아야 하든가 CT나 MRI를 찍기 위해 6 개월을 기다리라고 하면 난리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가보지 않은 길'이란 글이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 내지 아쉬움을 갖고 산다. 선택의 순간에 다른 선택을 하였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다. 그러나 사실 그 길도 별로 다르지 않다. 생이란 우리가 순간순간 어떠한 자세로 살았는가의 총합이고, 제임스 앨런의 말대로 '현재의 모습은 과거 생각의 결과'다.

누구나 잘 된 선택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은 잘못된 선택을 잘된 선택으로 바꾸는 지혜가 있다. 우리도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 발목 잡히지 말고 그걸 잘된 선택으로 바꾸기 위해 오늘부터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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