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문철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논설위원

여느 때처럼 조간신문을 물리고 난 뒤, 커피 한잔을 들며 웹 서핑을 하노라니, 큼지막한 박스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대구광역시의사회장이 5,700명의 회원에게 보내는 호소문이다. 읽어내려가노라니 자구마다 구절마다 가슴을 울린다. "이 위기에 단 한 푼의 대가, 한마디의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시민들을 구하자." 이보다 더 진지하고 이보다 더 간절할 순 없다. "우리 모두 생명을 존중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선후배 형제로서, 우리를 믿고 의지하는 사랑하는 시민들을 위해 소명을 다하자." 

화제의 인물, 대구광역시의사회장 이성구 씨. 나이 60에 개인 의원을 공동운영하고 있는 그는 과감히 휴가원을 내고 전선에 뛰어들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요, 어려울 때의 노력이 빛을 발한다."라며 지금 바로 달려와 달라고 간곡히 호소한다. 자신이 가장 먼저 위험하고 힘든 일 하겠으니, 부디 회원들이 열화와 같이 신청해 달라고 울부짖는다. 두렵고 불안하기는 자신도 마찬가지란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녀가 매일 매일을 살아내는 삶의 터전이 직면한 이 엄청난 의료재난을 그냥 볼 수만은 없잖으냐며 쏟아내는 그의 절규를, 정말이지 눈물 없인 읽어 내려갈 수가 없었다. "안전에 대해 보장을 할 수가 없는데, 무조건 대구로 와달라고 말하는 게 미안하다. 스스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와주기 바란다."라는 대목에선 나도 감정이 더욱 북받친다. 마침내 이 호소문은 대구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왔다. 호소문이 나간 바로 뒷날 우선 대구지역 의사 250여 명이 모여든 것이다. 

전대미문의 파괴력을 가진 이번의 <바이러스-19>는 우리 국민의 결집력을 다시 한번 시험하려나 보다. 나는 국난극복을 위한 우리 국민의 저력을 믿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시각각으로 늘어만 가는 환자에 비해 의료인력과 시설, 장비 등 물적 여건의 태부족도 큰 문제거니와, 무엇보다 의사들의 피로감이 누적되어 가는 게 더 큰 문제다. 이를 간과하면 자칫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문제다. 무겁고 갑갑한 방호복을 입은 채 의자에 맥없이 쓰러져 있는 어느 의사의 보도화면은 우리 마음을 너무나 안쓰럽게 한다. 

이 난국에 수많은 관계자의 헌신이 눈물겹지만, 그중에 특히 의료인들을 마음에 품고, 헨리 반 다이크(Henry Van Dyke)의 시 '무명교사 예찬'을 새삼 음미해 본다. 이 시를 읊조리며 드리는 나의 이 소박한 소회(所懷)가 재난 현장의 여러분들에게 다소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본디 의사와 교사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소임이 같다고 본다. 의사가 육체적(physical) 접근을 통한 건강인을 지향하는 데 비해, 교사는 정신적(mental) 접근을 통해 인격자를 지향해 나간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길에서 하나의 전인(全人)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 요컨대 의사나 교사 모두에게 공통으로 요구되는 덕목은 '인간 사랑'이다. "지식은 새 책에서 배울 수 있되, 지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오직 따뜻한 인간적 접촉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로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의술을 '인술'(仁術)이라 하였나 보다. 

자신의 삶과 안전도 다 뒤로한 채 오늘의 재난 현장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시는 의료인들, "그를 위해 부는 나팔 없고, 그를 태우려고 기다리는 황금마차도 없으며, 금빛 찬란한 훈장이 그의 가슴을 장식하지 않도다." 정녕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는 전국 각지의 수많은 의료인과 공직자와 봉사자 여러분, "그가 켜는 수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에 그에게 되돌아와 그를 기쁘게 하리니, 이것이야말로 그가 받을 보상이로다." 그렇다. 블루벨즈의 노래처럼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여러분의 아름다운 이름들은 온 겨레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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