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희 ㈔제주역사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세상이 어수선함을 넘어 패닉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방역망을 뚫고 지구촌 각지로 퍼져나가면서 세계적 대유행 단계에 접어들었다.

미국이 지난 주말 국가비상 사태를 선포했으며 많은 나라들이 장막을 내리며 국경을 걸어 잠그고 있다. 축제가 줄줄이 취소되더니 하늘길이 끊기고, 산업현장은 멈춰 섰으며, 학교는 아이들에게 문을 못 열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증시가 폭락하고, 유가는 곤두박질치고 있으며, 환율은 급등했다.

참으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뛰어 넘어 미증유의 세상이다. 가공할 핵무기가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우리 눈으로는 확인도 할 수 없는 미세한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국내에도 지난 1월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두 달여 동안 누적 확진자가 8,300명을 넘었고 84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봄 이 지면에 하늘을 온통 뿌연 회색빛으로 만들며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미세먼지를 내용으로 '봄날은 간다'는 칼럼을 썼다.

올해는 미세먼지에 앞서 코로나19가 마스크로 무장하게 했다. 치료제도 없는 신종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켜줄 유일한 방어막인 마스크를 사기위해 시민들은 줄을 길게 섰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의 궁여지책 말 바꾸기와 현장감각 미숙은 국민들을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하게 했다.

하루 최대 1000만장 안팎의 생산능력에 모든 국민이 마스크를 착용하려면 당연히 부족하다는 셈법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었다.

4.15총선을 향한 각 정당들의 발걸음은 바빠지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유권자를 만나지 못해 답답하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은 그렇게 비난하던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적을 이기기 위해 적을 닮아가는 내로남불 정치를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타당한 지적이다. 원내 제1당을 놓칠 수 있다는 절박감이 압박을 키웠겠지만, 이와 관련 그동안 민주당이 해왔던 발언들을 생각하면 이 같은 행보는 정도(正道)가 아니다. 이럴 것이었으면 지난 연말 그 난리법석을 벌이면서 선거법 강행을 왜 했는지...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이 확산되고 있는 이 시국에 일부 종교단체에 대한 밀접집회 제한에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에는 안타까움을 넘어 허탈감을 느낀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20세기가 저물어 갈 무렵 우리에게 닥쳤던 외환위기와는 차원이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는 이미 실물경제에 영향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제주지역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현실에 맞닥뜨렸다. 제주공항을 기점으로 하는 직항 국제노선이 모두 폐쇄됐다. 5개국, 26개 노선, 주간 390편이 중단됐으며 언제쯤 다시 운항이 재개될지 기약조차 모른다. 국내선도 탑승객이 50%이상 줄며 여행사를 비롯해 숙박업 등 지역의 중심산업인 관광업계가 휘청거리고 있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반 자영업자들도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임금삭감과 휴가사용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제적 파장이 어디까지, 언제까지 미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 땅의 봄은 유독 잔인했다. 이 찬란한 계절에 4.3이 있었고, 4.19가 있었고, 5.18이 있었다. 그리고 세월호가 있었으며,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가 찾아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올해도 꽃피는 계절인 봄은 우리들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봄이면 한 번쯤 읊조려 보는 노래 '봄날은 간다'. 많은 가수들이 불렀지만 올해는 그중 구성진 가락에 애잔하게 흐르는 목소리로 우리네 정서에 흠뻑 젖어들게 하면서 처연하기까지 한 장사익의 목소리로 들어 보는게 요즘 분위기에 맞을 것 같다. 연분홍 치마를 살랑이며 꽃놀이를 가지는 못할테니까.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