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제주어육성보전위원·시인·논설위원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서워서 외출을 삼가고 있다가 친구 모친 장례식엔 조문가야겠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차를 몰고 가다가 주유소에 들렀다. 마스크를 했지만 벗으며 차창을 열자 마스크를 턱밑에 걸고 있던 주유원이 차창 가까이 다가왔다. 나 또한 평소 습관대로 고개를 내밀고 주유금액을 말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친절이 몸에 배었으니 다가온 태도는 습관이므로 얼굴을 보이는 행동이 일상적인 모습이긴 해도 은근히 두렵다.
신호대기로 정차를 하고 전신주를 보았더니 까마귀가 앉아있다. 상여가 올라오면 묘역 주변 나뭇가지나 돌담에 앉았다가 제대로 초상을 치르는지 지켜보는 효자 새가 도심지까지 찾아왔다. 생각하기 나름이긴 해도 두렵다.
장례식장엔 조문객으로 초만원이다. 궨당문화가 발달한 제주도라서 그러려니 해도 마스크를 쓴 사람과 안 쓴 사람이 반반이다. 식탁이나 의자가 코로나 사태 이전 그대로라서 거리두기 또한 밀착 그대로다. 지병이 있어도 시간에 맞춰 모여든 친구들을 놔두고 조의금만 내고 빠져 나올 수도 없어 몇 십 년 만에 육지에서 온 친구랑 마주 앉았는데 조용히 밥을 먹으면 좋으련만 반갑다고 큰소리로 떠든다. 침 튀길까봐 마음 졸이다가 서둘러 빠져 나왔다.
웬 차가 이렇게 많은가?
육십 년 전만 해도 차가 귀해서 시골에 차가 들어오면 아이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어 차를 구경했다. 그 중에 방역차를 따라가는 재미도 있었다. 길을 걷다가 누굴 만났다는 말이 많았는데 요즈음은 차를 타고 다니느라고 도로를 걷는 사람이 드물다. 어려웠던 시절엔 삶은 계란 먹을 생각에 소풍이 즐거웠지만 이제는 손님보다 식당이 더 많이 생겼다는 착각이 들 만큼 음식이 넘쳐나고, 의학의 발달로 백세시대가 되었다고 호언장담하는 지금, 백신도 없는 바이러스 출몰로 세계가 전염병으로 팬데믹 몸살을 앓고 있다.
밀림에서 살아야 할 원숭이 떼가 상가에 출몰하여 음식물을 훔치는 나라가 있는가?
엄지발 붉은 게가 살기 위하여 도로를 질주하느라고 차에 치여 죽는가?
장독대에서 낮잠을 자야할 고양이가 침실에서 자고 마당에서 살아야 할 개를 시집가기를 포기한 여자들이 애완용보다 격상시켜 반려동물이라고 품에 안고 사는 나라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가? 비단뱀을, 귀 검은 거북이를, 눈알이 튀어나온 이구아나를 관상용으로 키우는 집도 많아지고 있는가?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고 누 떼가, 얼룩말들이, 굶주린 메뚜기 떼가 한꺼번에 도시로 몰려든다면 동굴에서 살아야 할 박쥐가 좀비의 피를 빨아먹고 좀비의 숙주가 되어 가로수나 가로등마다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상상은 삼류시인의 발상인가?
땅 속 깊숙이 매장되어 있어야 할 것들이, 빙하 깊숙이 잠복되어야 할 것들이, 바다 깊숙이 저장되어 있어야 할 것들이, 하늘 멀리 떠돌아야 할 것들이 문명의 발달로 풍성하게 활용하다보니 삶은 풍요로워도 그만큼 폐단과 악재도 발생하고 말았는가?
지구의 허파인 열대림의 파괴가 지구 온난화를 증폭시켰다. 식물이 품고 있는 방사능성분은 어디로 갈 것인가? 열대림에서 구한 여러 항암제 원료가 사라질 것이고, 열대림의 화재로 발생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는 지구의 기온을 높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하여 남극의 대륙빙하가 녹으면 잠복해 있던 탄저균이 지상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4세기 유럽에서 창궐했던 흑사병으로 죽은 미라더미가 회오리바람으로 쓸려나간 사막에서 무더기로 발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측 불가의 날씨로 미세먼지 입자가 더욱 촘촘하여 인수공통 전염병이 먼지로 확산 되면 어찌 될 것인가? 병인의 시원과 전파, 확산과 소멸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코로나 바이러스 정복과 동떨어진 이론에 불과한가?
중국 우한(武漢)에서 시작한 코로나19 전염 사태가 3개월을 넘기면서 유럽과 미국으로 빠르게 확산하여 전 세계의 코로나19 감염자가 50만 명에 이르고 코로나19 사망자도 2만 명을 돌파했다. 우리나라는 방역체계가 비교적 발달하여 완치자도 절반을 넘어섰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살아있는 물질이므로 세포배열에 따른 집합체가 있을 것이다. 인류공동의 사명인 게놈(genome) 프로젝트를 모두 완성하면 인류의 영원한 숙제였던 질병을 정복할 날이 온다.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신념으로 안전한 거리두기를 견디고 있으면 이 사태가 지나갈 것이다. 다만 언제이며 어떤 형태로 극복하는지가 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