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덕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논설위원

우정과 사랑은 문학의 주요 소재로 등장해 왔고, 문화콘텐트의 단골 메뉴가 될 정도로 인간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읽어내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우정과 사랑이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는데, 이는 인간의 존재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정과 사랑은 마주보아야 긍정의 빛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사람들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사람들에게 슬픔과 고통을 준다. 

우정과 사랑의 대상은 가족단위에서 사회관계망으로 확대되고, 종류도 다양하다. 즉 우정 나누기가 가능한 관계와 사랑 유지가 가능한 관계는 세대와 성별을 넘다든다. 우정이라 하면 대개 친구 간의 우정, 남녀 간의 우정에 국한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간혹 우정에서 출발하여 사랑으로 귀결되기도 하는데, 그 반대는 거의 성립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우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시간을 투자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등 부단히 노력한다. 이는 쌍방향으로 소통이 가능해야 진정한 우정이 맺어진다는 뜻이다. 자신이 좋다고 해서 상대방을 무조건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정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간에 우정이 유지될 때는 한평생 좋은 친구가 된다. 따라서 우정이 돈독한 사람은 서로에게 시간과 관심을 나눠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과도 통한다. 

인관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능동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간혹 자신은 가만히 있으면서 상대가 자신에게 다가와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 이는 우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정을 유지하려면 나와 네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 우정은 사랑과 달리 거절할 수 있다. 그 후유증은 작은 생채기로 남을 수 있으나 사랑의 거절 대가는 클 수 있다.         

사랑이란 모든 인관관계에 적용된다. 그 중에도 남녀 간의 사랑이 행복과 고통의 주요인이 되기도 한다. 우정은 쌍방향이어야 하는데, 사랑은 일방통행이 가능하다.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쪽만의 무조건적인 전진이 가능한데, 이를 짝사랑이라 한다. 짝사랑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가능하다.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기도 하고, 그와 반대로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갈망하기도 한다.               

결국 우정과 사랑은 인간의 존재 이유이면서 갈등 요인으로 작용한다. 서로 간에 주고받는 주파수가 적정해야 평행선을 유지하면서 긍정의 에너지를 교류할 수 있는데, 개인에 따라 전파 방해가 발생한다. 사람의 감정은 다양한 곡선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두 단어는 우리들의 삶에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우정으로 맺어진 사람들을 볼 때 정말 부럽고, 한편으로는 긴 세월동안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온 그 열정이 더욱더 부럽다. 우정은 단 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나눈 만큼 쌓인다. 우정에는 손익을 따질 수 없는 사랑이 배어 있다. 우정에도 관계 맺기를 방해하는 곡선이 있는데, 그 위기를 잘 극복한 사람들은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웃을 수 있다.       

우정이라는 단어가 우리들에게 어느 정도 다가올까, 또한 이 단어의 생명력이 얼마나 지속가능할까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인공지능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인간관계 유지의 중요성을 가벼이 여기는 것 같다.  

현재, 우리들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환경에 처해 있고, 각자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서 행동하고 있다. 이는 우리 자신은 물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의 발로이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 두기의 경계 기간이 종료되었을 때 우리들의 생활환경에도 변화가 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들은 우정이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존중하는 오류에 빠지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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