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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는 줄 알았는데"…응원에 용기 내는 'n번방'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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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4-06 (월) 09:22:57 | 승인 2020-04-06 (월) 09:51:02 | 최종수정 2020-04-06 (월) 09:52:22
자신을 'n번방 피해자'라고 소개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자의 글. 사진=연합뉴스

2차가해 등 우려 무릅쓰고 피해경험 속속 공개…"더는 피해 없었으면"
"용기 내줘 감사하다" 응원 답지…전문가들 "지지해줘야 피해자가 입 열어"

'n번방' 피해자 A씨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알게 된 남성의 '모델 아르바이트' 제안에 응했다가 협박을 받게 됐다. 가해자는 오피스텔을 '스튜디오'로 속여 A씨를 불러낸 뒤 촬영을 강요하고, 이를 유포하겠다며 다른 영상을 찍어 보내도록 협박했다고 한다.

가해자는 A씨가 메시지에 답하지 않으면 "영상이 퍼져도 상관없다는 건가? 아직 안 퍼져봐서 모르겠지? 네가 성인이 되고 과연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한번 볼게"라며 위협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가족 휴대전화 번호까지 거론하자 A씨의 속은 타들어 갔다.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이 공론화한 이후 A씨는 가해자가 자신을 협박하는 내용이 담긴 대화 캡처본을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며 이렇게 썼다. "더는 피해가 생기지 않게 이번에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의 용기에 화답하는 메시지가 답지했다. 누리꾼들은 "우리가 항상 네 곁에 있을게요.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절대로 잊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식지 않을 겁니다", "많은 사람이 기억할 거고 당신 편이니까 늘 행복하길 바랍니다"라며 힘을 보탰다.

A씨처럼 피해를 겪고도 드러내지 못한 채 숨어 있었던 디지털 성 착취 피해자들이 최근 익명 SNS 계정 등을 통해 속속 자신의 경험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를 향한 사회적 낙인과 2차 가해, 가해자에 대한 가벼운 처벌 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들이 쉽사리 용기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 "캄캄한 세상에 혼자인 줄 알았는데"…응원·지지에 피해자들 용기

약 1년 전 성 착취 범죄에 당한 미성년 피해자 B씨는 이후 항상 두려움과 죄책감 속에 살아왔다고 한다. 그는 채팅 앱을 통해 알게 된 남성의 '스폰 알바' 제안에 응했다가 협박에 휘말렸다. 가해자는 수백만 원의 돈과 아이폰을 주겠다고 꾀어 B씨에게 접근한 뒤 영상을 찍어 보내게 했다.

가해자는 주기로 약속한 것들을 주지 않았다. 이를 문제제기하자 "나는 네 영상을 다 갖고 있고 너에 대해 다 안다. 그러니 기어오르지 마라"는 협박이 돌아왔다. 원하는 영상을 다 받아낸 가해자는 "영상 유포한다. 수고"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B씨는 '영상이 유포돼 주변 사람들이 날 알아보면 어쩌지', '날 찾아오면 어쩌지' 하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런 피해를 당하고도 '내가 피해자가 맞나'라는 생각을 했다. 애초에 가해자의 '스폰 알바' 제안에 응했던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러다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이 공론화했다. 그때까지도 '내가 증언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조용히 지내야 할까'라며 고민하던 그는 결국 자신의 경험을 온라인상에 공유했다. '피해자 책임론'을 들먹이며 자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염려되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고 싶었다.

B씨는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리면서 "n번방의 실태를 세상에 알리고, 다른 피해자들이 내 글을 보고 용기를 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비난을 각오하고 글을 올렸다"고 밝혔다.

그는 "트위터 등에서 사람들이 피해자를 응원해주고, 국민청원을 올리고 동의해주는 걸 봤다"며 "캄캄한 세상을 혼자 걷고 있는 줄 알았는데 도와주고 손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캄캄한 세상에서 빠져나온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마 나처럼 걱정돼서 말도 못 하는 애들이 많을 텐데 이 글을 보면 너희도 조금 용기를 내 도움을 청해봐"라며 "같이 증거 수집해서 그 XX들 감옥에 보내버리자"고 했다.

다만 B씨는 '조건 만남'을 하고 있을 미성년자에게는 생각을 바꾸라고 당부했다. 그는 6일 연합뉴스와 나눈 SNS 대화에서 "그들에게 '제발 그런 길로 빠지지 말아요. 내 인생처럼 되지 말아줘요'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B씨에게도 응원 메시지가 쏟아졌다. 한 누리꾼은 "지금까지 살아서 버텨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정말 쉽지 않으셨을 텐데 용기 내주셔서 그저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못 드리겠어요. 끝까지 연대하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며 위로하는 메시지도 여럿이었다.

유승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잘못이라는 메시지를 많은 여성이 내고 있고 수사기관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피해자가 말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이 단단하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부당한 낙인 악용했던 가해자들…2차 가해 없어야

지금껏 성 착취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이나 주변에 피해를 알리고 도움을 청하지 못한 채 혼자 움츠러드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피해를 겪은 여성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이 낙인처럼 존재했고, 계속되는 영상 유포와 협박, 2차 가해, 가해자에 대한 낮은 처벌 등이 두려움을 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가해자들은 이런 현실을 적극 이용하며 죄의식을 덜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가해자로부터 '영상이 퍼지면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 말을 들었다는 A씨는 "가해자는 그 영상이 텔레그램이라는 앱에서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제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며 "혹시 제 영상이 다른 사이트에 유포됐을까 봐 지금까지도 아침저녁으로 검색을 한다"고 했다.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텔레그램 성 착취를 두고도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2차 가해가 이뤄지는 것이 사실이다.

권현정 탁틴내일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경찰에게든 주위 사람에게든 그런 피해를 털어놨을 때 지지해줘야 피해자가 용기를 낼 수 있다"며 "착취하고 동영상을 유포하는 사람들의 잘못이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고해도 가해자가 정말 죗값을 치를지 모르겠다는 의구심도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피해자 A씨는 "만약 가해자가 잡힌다고 해도 대한민국에서 정당한 처벌을 받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며 "그 사람이 과연 내가 아픈 만큼 아플 수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피해 신고가 별로 없는 것은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된 사례가 없기 때문"이라며 가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와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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