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내 한 고등학교 방송실에서 한 교사가 온라인 강의 수업을 시연하고 있다. 김대생 기자

평생 한번인 '2020학년도' 수업 질 걱정…학습 태도·성적별 원격수업 효과 차이 커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 온라인 개학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원격수업이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학교 무선인터넷망 부족 등 기술적 문제는 인력과 재정을 투입하면 비교적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지만 '수업의 질'은 짧은 기간에 높일 수 없어 더 문제다.

물론 감염병 확산이라는 비상시국에 궁여지책으로 원격수업이 실시되는데 수업의 질을 따지는 건 사치라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수업을 듣는 학생에게 '2020학년도'는 올해 한 번뿐이다. 학생들은 올해 학년에 맞춰 배워야 하는 것을 올해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평생 배울 기회가 없으니 수업의 질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8일 교육계에 따르면 초등학교 저학년생과 고등학생 대상 원격수업은 EBS 강의 등 기존의 콘텐츠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콘텐츠 활용 수업'이 주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 대상 원격수업은 초등 저학년이나 고교생보단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교사들이 꼽는 대표적인 등교수업과 쌍방향 원격수업 차이는 학생과 소통이다.

교사들은 교사 1명이 학생 20명을 두고 쌍방향 원격수업을 하면 1대1 수업 20개를 동시에 하는 것과 같다고 입을 모은다. 교실에서 수업할 때와 달리 학생들이 한꺼번에 피드백을 요구하기 때문에 수십 배는 정신이 없다고 지적한다.

콘텐츠 활용 원격수업은 학생의 학습 태도에 따라 효과가 크게 차이 나는 점이 문제다. 한 콘텐츠를 오랜 시간 집중해서 보기 어려운 초등 저학년생은 원격수업 효과가 아예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교육 전체가 원격수업으로 실시되는 상황에서 학생별 수업 효과 격차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특히 콘텐츠 활용 원격수업이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공부를 못하는 학생' 간 '학력 격차'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길혜지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과 백순근 서울대 교수가 2016년 발표한 '성적 분위와 거주지별 EBS 수능강의 수강이 수능점수에 미치는 차별적 효과 분석' 논문을 보면 일반고 학생 4천600여명을 조사한 결과 중하위권 학생은 EBS 강의를 들은 경우에 수능 표준점수가 오히려 낮게 나왔다.

예컨대 수학은 수능 수학영역 표준점수 상위 10%를 뺀 나머지 학생은 EBS 강의를 들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표준점수가 1.789~2.366점 낮았다.

연구진은 "중위권 학생은 고교 2~3학년에 걸쳐 EBS 강의를 연속해서 수강하고 일평균 수강시간도 긴 경우가 많았지만, 상위권과 하위권은 연속해 수강하는 경우가 적고 일평균 30분 이상 수강했다는 비율도 낮았다"면서 "EBS 강의가 중위권에 맞춰져 상위권에는 수강이 비효율적으로 여겨지고 최하위권은 EBS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어 수강을 포기하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원격수업 탓에 수업이 과거의 '일방적 지식전달형'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고교에서는 입시 준비를 핑계로 수능 대비 EBS 강의만 반복해서 보는 원격수업이 이어질 수 있다.

대학입시에서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 비중이 확대하며 겨우 자리 잡은 '과정중심평가'(수행평가)가 비중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사로선 원격수업은 등교수업보다 학생의 수업태도 등을 관찰하기 어려우니 학생을 평가하는 데도 자신이 없어 과정중심평가를 피할 수밖에 없다.

교사와 학생 간 소통이 원활치 못한 상황에서 평가를 시행했다가 '공정성 시비'가 일 가능성도 있다. 수업 이후 과제를 해오게 하고 이를 평가하는 경우 과제를 사교육업체에 '아웃소싱'할 수 있어 더 큰 공정성 시비가 생길 수 있다.

이에 따라 교육부가 "원격수업 시에도 교사가 학생의 수행과정과 결과를 직접 관찰 또는 확인할 수 있으면 이를 평가하거나 학교생활기록부에 반영할 수 있다"고 밝혔음에도 많은 학교가 등교수업이 이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필평가 중심의 학생평가를 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교육부도 최근 시·도 교육청과 가진 신학기 개학준비 추진단 화상 회의에서 "시도별로 30∼40%로 정해둔 수행평가 비율을 낮출 수 있도록 조정하라"고 권고했다.

교육당국도 '공정성 시비'를 우려해 중간고사를 치르지 않는 경우는 사실상 없을 것으로 본다.

중·고교 학업성적관리지침에는 평가를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로 구분해 실시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지필평가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나누라는 규정은 없다. 중간고사 없이 기말고사만 시행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중간고사를 없앤다고 하면 학생들 반발이 크다.

한 고교 교감은 "국어와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 중간고사를 치르지 않고 수행평가만 한다고 하면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다"면서 "예체능 과목은 몰라도 주요 과목은 반드시 중간고사를 치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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