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열 한국교육학회장·경남대교수논설위원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각자 관점에서 다른 내용과 의미로 이해한다. 어떤 학자는 약간만 솜씨 있게 다루면 집어넣고 싶은 어떠한 사회적 사실도 능히 그 속에 집어넣을 수 있는 일종의 '여행용 가방'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합의하는 민주주의란 정치 형태뿐만 아니라, 생활방식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개인들이 일반적 문제에 대하여 자유롭게  논쟁하고 토론하는 방법이면서 그 방법을 규율하는 원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실현되지 않는다. 제도적인 측면과 심리적인 측면에서 몇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만 민주주의의 의미가 실현된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대의제도, 보통선거권, 공적 책임을 묻는 주기적인 자유선거, 언론과 결사의 자유 등이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필요조건이 된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제도적 요건만 갖추어진다고 해서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 하면, 민주주의는 특정 형태의 제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제도가 민주주의의 '의미'와 '원리'에 맞게 '운영'되어야 하는 것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도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개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의미와 원리를 반영하고 있는 제도가 그 본래적 성격에 맞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제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치· 자결능력, 갈등 관계에 대한 합리적 의식, 자신의 이익에 대한 양보 의식, 선의의 경쟁의식 등 특별한 능력과 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칼 벡커라는 세계적 정치학자는 이러한 특성들이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며, 이 조건이 적절하게 지속될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그 나름의 제 기능을 행사할 수가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심리적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피터즈라는 영국의 교육철학자는 이를 '국민의 관습'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면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우선,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추상적 원리들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데 바탕이 되는 여러 가지 적절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아이디어를 지적으로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일은 바로 그러한 전통 속에서 자란 사람들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절차적 원리의 수준에서 상당한 정도로 합의가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현실에서 실현되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평등, 자유, 이익의 고려, 인간존중 등과 같은 원리를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는 선전이나 욕설로 타락할 것이며, 사람들은 자기와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들을 악당 내지는 구원받아야 할, 길 잃은 영혼으로 취급할 것이다.

끝으로 들 수 있는 민주주의의 심리적 요건은 공공생활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욕이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공공생활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하면 위험에 봉착할 수도 있다. 행정적인 능력이 있고 탁월한 합리성을 가진 사람들은 공무에 참여하는 것을 싫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일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후보들 중에서 선거철에만 유권자를 왕으로 모시고, 당선 후에는 유권자를 우습게 여기는 후보를 뽑아서는 아니 된다. 어떤 후보가 국민의 대표로서 국회라는 대의제도에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덕성과 역량을 갖추고 있는 사람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국회의원으로서 당선 후에도 유권자의 뜻을 잘 받들고, 제대로 공적 책무를 다 할 사람을 잘 가려내야 한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하여 마스크를 끼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도 선거에 참여하여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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