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한 제주특별자치도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을 천명하며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을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로 국회를 구성하느냐 여부는 코로나19로 어려운 국가적 비상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역사적 선택이 된다. 우리가 선출할 300인의 국회의원은 입법권을 행사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며 연간 500조 원의 예산안을 심의·의결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일과 11일 제주 유권자들이 보여준 사전투표 열기는 코로나19로 인한 투표율 하락의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주었다. 발열검사와 손소독에 협조하는 1미터 간격의 마스크 행렬을 보고 있자니 미국과 일본에 앞서는 세계 23위 민주주의 국가(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민주주의 지수 2019')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차분하고 질서정연하게 주권을 행사하는 모습에서는 청정 제주인의 자부심과 대한민국의 밝은 내일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사전투표 열기를 이어 내일도 많은 참여가 있기를 바란다. 많은 참여는 당선인에게 국민 대표자로서 더 큰 정당성을 부여하며 그 과정에서 국민의 주권의식도 높이는 선순환 동력이 된다. 그리고 투표소에 갈 때는 후보자와 정당의 선거공보를 꼼꼼히 살펴보기를 권한다. 비례대표선거에 참여하는 정당이 35개에 이르는 만큼 투표소에서 비슷한 정당명에 혼란을 겪지 않으려면 선거공보와 인터넷을 통해 지지할 정당의 명칭과 기호를 미리 알고 가는 것도 좋다.  

혹자는 지난 9일부터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공표가 금지된 상황에서 후보자 지지율 추이를 궁금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법에서 이를 금지하고 있는 취지는 선거일에 임박하여 공표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자칫 유권자의 표심에 비합리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우세한 후보자에게 편승하려는 밴드왜건(bandwagon) 효과와 열세인 후보자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언더도그(underdog) 효과가 투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이 때문에 우리 선거법에서는 일정 기간 동안 이를 제한하고 정책과 공약에 따른 선택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23일과 24일 동안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하여 실시한 유권자의식조사에 따르면 후보자 선택기준으로 △후보자의 인물·능력 29.8% △정책·공약 29.7% △소속정당 29%순으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를 지난 20대 총선 같은 기간 조사결과(△인물·능력 35.1% △정책·공약 27.3% △소속정당 16%순)와 비교해 보면 과거 인물중심의 후보자 선택 기준이 정당과 후보자의 정책·공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지난 2006년 시민단체 주도로 시작된 매니페스토 운동은 후보자가 정책과 공약을 제시할 때 우선순위와 이행기한, 그리고 이에 소요되는 비용과 재원조달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선거법이 정책과 공약의 비용추계에 대한 의무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결과 공약의 현실적합성에 대한 판단은 언론과 유권자의 몫이 된다. 현명한 유권자가 되어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지 않는 한 그럴듯한 감언이설에 소중한 표를 잃을 수도 있다.

한 표의 의미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제주도의 경우 지난 20대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선거를 합산하여 4,711표의 무효표가 나왔다. 한 표로 인해 당락이 갈린 사례를 나열하지 않더라도 한 표의 무게감을 현명한 유권자라면 잘 알 것이다.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이 있은 지 60년이 되는 오늘, 스마트한 유권자가 만들고 대한민국이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선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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