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창 제주항공정책연구소 소장·논설위원

제주의 봄철은 맑은 날이 많지만 가끔 부는 남풍으로 인한 윈드쉬어(순간돌풍)때문에 항공기 조종사들이 애를 먹는다. 정도가 심하면 항공기 사고를 우려해서 회항하거나 결항하기도 한다.

제주공항에서도 큰 사고가 있었다. 1994년 A-300항공기가 이호 쪽에서 착륙하다가 활주로를 넘어 용담 쪽 울타리에 부딪쳐 불이 났다. 항공기는 통째로 불탔다.

나쁜 기상으로 사고 발생

그 날은 비가 가끔 내렸고 순간돌풍이 불고 있었다. 이 돌풍은 바람방향과 세기가 종잡을 수 없이 바뀌기 때문에 항공기 조종을 어렵게 한다. 이럴 때는 바람에 밀리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속도를 올린다. 사고조사 자료에 의하면 이 날도 착륙할 때 적정속도 147놋트 보다 높은 185놋트로 접근했다. 

활주로에 최초 접지는 일반적으로 착륙활주로의 3백m 지점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그 때는 활주로 3천m 길이의 반을 지난 약 1천7백m에 첫 접지가 이뤄졌고, 그럼에도 기장은 활주로 상에서 속도를 줄여 정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부기장은 순간적으로 남은 활주로에서 안전하게 착륙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기수를 들어 복행(다시 올라감)을 시도하다가 착륙에 필요한 활주로 거리를 더욱 부족하게 했다.

항공기는 결국 활주로를 150m 벗어나 공항 울타리와 배수로에 걸쳐 정지했다. 날개 쪽에서 불꽃이 튀면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탑승객 160명은 비교적 질서 있게 항공기에서 내려 다행히 큰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 사고를 통해서 조종석에서 기장과 부기장의 역할분담에 대한 문제도 있었지만, 공항당국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첫째는 항공기가 활주로를 향해 진입하다가 앞의 경우처럼 활주로를 많이 놓치거나 활주로에 잘 맞추지 못해 정상 착륙이 어렵다고 할 때, 다시 공중으로 올라갈 통로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람만이 아니라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일정 고도까지 내려와 활주로를 발견하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공중에 정지할 수 없으니 안전하게 빠져 나갈 퇴로가 있어야 한다. 인터넷에서 찾으면 착륙하다가 실패해 복행하는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둘째는 활주로 끝단에 안전지대를 확보해야 한다. 기상이나 조작실수로 항공기가 활주로를 넘어간다 하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잔디밭으로 일정공간을 평탄하게 마련해 두는 것이다. 인명을 구하는 일이다.

제주공항에서 보조활주로를 활용한다고 했을 때,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보조활주로는 우선 길이도 짧지만 바다 쪽에서 착륙하다가 실패해서 복행하면 시내 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시내 쪽은 지형과 높은 건물로 육중한 여객기가 저속에서 치고 올라가거나, 낮은 고도에서 선회하기에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또한, 보조활주로 끝에는 안전지역이 부족하다. 이 부족함을 파리공항공단(ADPi) 용역보고서에는 어레스터(Arrestor)를 설치하면 된다고 했다. 어레스터는 군용비행장에서 작은 전투기가 활주로를 벗어 날 때 줄이나 그물로 잡는 것인데, 덩치가 큰 민간 항공기에도 쓸 수 있다는 발상은 너무 나갔다. 국제공항 시설기준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규정에 그런 방안은 없으며, 민간 항공기 바퀴 등에도 그와 같은 고려는 없다.  

보조활주로 활용은 곤란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보조활주로에 제트여객기가 바다 쪽에서 착륙하는 것과 시가지 쪽으로 뜨고, 내리는 것을 20여 년 전부터 허가하지 않고 있다. 안전상 문제가 있고, 시설을 보강해도 별로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조건이 좋고 긴 활주로에서도 돌풍의 영향으로 사고가 발생했다. 하물며 여건이 나쁘고 대형사고 우려가 있는 보조활주로를 비전문적인 일반인들이 여론으로 다시 활용하자고 해도, 위험방지에 책임 있는 정부가 동의할까? 실제 비행할 조종사도 기피하는 것으로 안전운행에 합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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