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문철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논설위원

2018년 하반기부터 경기 급랭의 징후가 감지되더니, 2019년 초부터는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내외 관련 기관들의 경제 위기 경고가 잇따랐다. 현장에서는 심지어 IMF때 보다도 더 어렵다고들 아우성치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낙관론을 펼치는 가운데, 무심한 세월은 총선을 코앞으로 당겨다 놓았다. 야당은 이러한 국면을 놓칠세라 오늘의 경제난국은 문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에 기인한다고 규정하며 정권심판론을 부상시켰고, 세간에 적잖은 공감을 불렀다.   

구랍(舊臘)에 접어들자 설상가상으로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로부터 생전 듣도 보도 못하던 코로나라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유입됐다. 이 여파는 국민 생활과 산업 전반에 가히 쓰나미라 할 정도의 파장을 불렀다. 상황이 이렇게 돌변하자, 이 바이러스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지켜내는 일이 경제문제보다 더 시급하다는 쪽으로 국면이 전환되기에 이르렀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의료진의 우수한 역량과 살신성인적인 헌신, 관계 공무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눈물겨운 수고, 그리고 국민의 협조적 참여 등으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마침내 온 세계로부터 의료선진국이라는 찬사와 더불어, 진단 키트 등의 각종 장비와 노하우는 여러 나라에서 벤치마킹 또는 수입해 가기에 이르고 있다. 

한편 코로나 사태 이전의 경제 난맥상에 대해 뜨겁게 달아올랐던 정치권의 공방은, 사실상 코로나 사태가 하나의 블랙홀이 되어 완전히 빨려 들어가 버렸다. 특히 치료와 방역의 성과는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를 견인해 내는 동인(動因)이 되었고, 여당의 전례 없는 압승 달성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실천과 사재기 없기 등 높은 공공질서 의식은 대내적으로는 국민의 자긍심을, 대외적으로는 국격(國格)을 높이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난국에 선거를 원만하게 치러낸 것은 대내?외적으로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재난지원금의 지급범위에 대해서는 정부 여당 간 합의로 매듭은 됐다지만 뒷맛은 그리 개운찮다. 여당은 전 국민 100% 지급이 선거공약임을 내세워, 소득 하위 70%를 주장하며 버티던 정부와 몇 가지 전제를 달고 합의를 이뤄냈다. 그 전제란, 일단 100%를 지급한 후 상위 30%에게는 자발적 신청 사양, 또는 신청 후 기부를 유도하기로 한 것이다.

한편 이렇게 해서 확보된 자금은 국채 갚는 데 쓰는 게 아니라, 고용유지나 실직자 지원 등 더 시급한 곳에 지원하기로 하고, 기부금 모으기 등을 법률의 제·개정으로 뒷받침하기로 했다. 아니, 이럴 거면 상위 30%에게는 아예 지급하질 말았어야지, 일단 지급해 놓고 그게 되돌아오기를 기대하는 모양새는 우스갯거리 아닌가. 당초 정부안대로 했더라면 국채발행 없이 국가와 지자체 재정을 조정하는 선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잖은가. 그리고 합의안대로 한대도 몇 가지 문제는 있다. 즉, 상위 30%의 사양이나 기부가 과연 제대로 이뤄질지, 또 그렇게 된다 해도 그 자금은 다른 용처(用處)로 쓴다니, 어차피 정부 추계대로 3~4조의 국채는 감수해야 하게 돼 있다. 

필자는 어렸을 적에 들었던 "손톱에 배접 나는 건 알아도 염통에 쉬 싸는 줄은 모른다."라는 속담을 아직껏 기억하고 있다. '배접'(褙接)이란 아마도 겨울철에 노인네들 손톱 밑이 갈라질 때 헝겊으로 싸매던 것을 일컫는 듯한데, 그 뜻은 새겨볼 만한 경구(警句)다. 정부 여당의 재난지원금과 관련한 논쟁을 보면서 이 속담을 떠올려본다. 옛말에 '돌덩이 하나보다 징검다리를 생각하라.' 했다. 필요할 경우 국채를 발행하면 된다는 식의 안이한 듯한 발상은 사실 '밑돌 빼서 윗돌 괴기'와 무엇이 다르랴. 지자체나 국가나 그저 만만한 게 지방채요 국채인가. 나랏빚은 곧 백성의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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