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더럭초등학교 교장

'오월은 푸르구나!'를 외치며 초록빛이 짙어진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사라진 학교는 아무리 찬란한 오월이 왔지만 기운 없이 멀리멀리 큰길을 내다보며 '오월은 보고 싶구나!'를 말하고 있다.  

지난 2월 코로나19가 창궐해 처음 개학을 연기할 때는 은근히 아이들은 더 놀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그까짓 2주쯤이야 뭐' 가볍게 생각하며 '선생님 2주 후에 봬요!' 신나게 인사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어느새 두 달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학교 현관 앞 벚꽃이 봉오리를 맺을 때는 곧 활짝 피면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진 찍을 최적의 장소를 찾으며 기다리기도 했지만 이제 벚나무는 꽃잎을 다 떨어뜨리고 새순이 올라와 초록이 짙어졌고 운동장 잔디는 주인을 기다리다 못해 한 번 깎아내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가꾸려고 준비해 둔 텃밭에 선생님이 대신 심어놓은 채소들도 아이들의 발자국소리, 웃음소리가 그리워서인지 축축 늘어져 자랄 기미가 안 보인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아쉬움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멀리서 학교를 바라보고 선생님이 보내 준 학교의 봄을 담은 영상을 본다. 교실 앞 화단에 핀 꽃과 새로 만들어진 시설물과 교실의 모습을 들여다 보지만 학교는 언제나 다닐 수 있을지 매일 매일 걱정이다. '선생님, 한 번만 교실에 가보면 안 될까요?' '하루만이라도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고 싶어요.' 아이들이 이렇게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한 적이 또 있었을까?

아이들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수업을 할 때는 몰랐는데 선생님이 원격 수업 준비를 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은 원격 수업은 완벽함을 요구하고 그래서 한 시간 수업을 위해 때로는 며칠 동안 고민하기도 하면서 휴일조차 학교에서 수업계획을 세우고 수업안을 만든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학습지도 만들고 혼자 지내는 아이들 마음이 혹시 상처라도 받을까 봐 친구가 되어 줄 식물 친구, 놀잇감도 챙겨준다. 찾아가 안부도 묻고 얼굴도 보지만 돌아오는 길이 늘 아쉽기만 하다.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오면 다시 놀라게 될 것이다. 교실과 복도에 붙여놓은 발바닥 스티커만큼 친구와 떨어져 지내야 하고 퐁당퐁당 노래가 끝날 때까지 수시로 손도 씻어야 한다. 드나들 수 있는 문도 제한했고 급식을 먹을 때는 많은 시간 간격을 두고 한 줄로 앉아서 먹어야 한다. 햇빛 놀이 시간도 학년마다 다르고 체온도 세 번 이상 재어야 할 것이다. 짝꿍도 없을 것이고 모둠도 없을 것이다. 지난해처럼 친구들과 뒹굴며 노는 시간도 없을 것이고 마스크 때문에 귀찮은 일도 많아질 것이다. 어쩌면 선생님의 잔소리도 많아질 것이고 지켜야 할 규칙들이 산더미만큼 많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동안 항상 누리던 일상이라 소중함을 몰랐는데 사라지고 나니 얼마나 감사한 일상이었는지를 알게 됐다. 예전에는 교실에서 뒹굴고, 다투고, 수다쟁이였던 녀석들도 만나면 아플 만큼 꼭 안아줄 수 있을 만큼 사랑이 커졌고, 단번에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건강하게 그저 건강하게 운동장의 햇빛을 누리게 할 것이고 뜻밖에 더 깨끗하고 맑아진 공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느끼게 해 줄 것이다. 1m 떨어져 있어도 친구와 우정을 나눌 수 있도록 해 줄 것이고 한 줄로 앉아 말없이 먹어도 학교급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점심이라는 것도 알게 할 것이다. 

여느 해 같으면 따뜻한 봄 축제와 행사로 어린이날을 선물했을 오월이다. 하지만 올해 선생님들이 고민하며 결정한 아이들 선물은 예쁜 텀블러. 이제 학교에서는 자기만의 컵으로 물을 마셔야 한다면서. 아이들이 부디 선생님 마음을 헤아려주면 좋겠다.  나를 보고 너를 보고 이 봄을 서로 마주 보는 봄으로 맞이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다린다. 아이들을 만나면 날마다 학교 다니는 것이 너무 좋아서 매일매일 학교생활을 꿈꿀 수 있도록 즐거움으로 차곡차곡 채워줄 것이다. 

아이들을 맞이하는 날은 현관 앞 벚꽃보다 더 예쁜 아이들 웃음꽃이 운동장 가득 필 것이다. 그날이 바로 '오월은 푸르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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