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호진 제주대학교 경영학과 부교수

"아빠, 그래서 학교 언제 가는 거야?"

올해 8살이 되어서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딸내미가 날마다 묻는 말이다. 최근에는 별로 궁금해 하지도 않는 눈치이다.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일어나서 끄적 끄적 숙제 몇 장을 해치우고서는 사실상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대는 일상이다. 하루 종일 뒤치다꺼리 하는 엄마만 죽을 맛이다. 어쩌면 본인으로서는 인생 최고의 휴가를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의 풍경을 크게 바꾸어 놓고 있다.

얼마 전 이태원 발 지역감염의 확산에 놀란 정부가 고등학교 3학년의 오프라인 개학을 하루 앞두고 다시 연기하는 모습을 온 국민이 지켜보았다. 요 근래 우리 정부는 전문가다운 구석 하나 없이 날이면 날마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체면을 구기고 있다. 어려울 때 일수록 침착하게 척척 처리해내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나마 차마 눈뜨고 못 볼 정도로 망신살을 뻗치고 이웃 나라 정부를 생각해 보면 조금 위안이 되기는 하다. 본고에서는 이렇게 가장 중요한 시기에 우왕좌왕, 허둥지둥 대는 정부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주 오래 전의 지혜를 잠시 빌려보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중국이 한참 소란스러웠던 춘추전국시대 오(吳) 나라에 손무(孫武)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종이도 아닌 대나무 쪽에 총 13편의 병법서를 저술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손자병법(孫子兵法)이다. 사실 13편으로 편집한 것은 후일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의 작품이기에, 원본이 어떠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吳)나라는 후일 월(越)에 의해 패망하게 되고, 그 와중에 중국의 4대 미녀라고 일컬어지는 서시(西施)가 등장한다. 그 미모가 너무 뛰어나서 연못의 물고기가 기절하였다는 침어(沈魚)의 별명을 가지고 있는 바로 그 서시이다. 이렇게 고대 중국의 혼란스러운 시절에 집필된 손자병법은 지금까지도 전략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저서로 손꼽힌다. 

손자병법의 정수는 기정상생(寄正常生)이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의 개념은 형(形)과 세(勢)인데. 형은 형태이고 세는 세력을 의미한다. 형태는 미리 갖추어 놓은 것이고, 세력은 상황에 맞추어 운용의 묘를 발휘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형(形)은 실력이고, 세(勢)는 임기응변인 것이다. 저수지에 물을 쌓아놓고(形), 상황에 맞추어 물을 방류(勢)하는 개념이다. 손자는 승리를 위해서는 이러한 실력과 임기응변이 모두 갖추어져 있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기정상생(寄正相生)이란 정공법과 기묘한 술수가 서로 상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항상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임기응변에 능하다고 승리를 보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길 수 있는 조건은 상대방에 있고, 지지 않는 조건은 나에게 있다"는 손자병법의 표현은 실로 절묘하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침착하게 기지를 발휘하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상 못한 상황 앞에서 결국 누구나 허둥대게 마련인 것이다. 옛 독일 프로이센의 참모총장을 지냈던 헬무트 폰 몰트케는 "적과 마주치는 순간 이전에 준비했던 모든 계획은 휴지조각이 된다"는 말을 남겼다.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우리 정부,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가 보여주는 다소 당황해 하는 모습에 너무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난세(亂世)의 형국이다.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수(정부)들이 허둥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서양의 손자병법이라 일컬어지는 '전쟁론(vom kriege)'의 저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란 탁한 흙탕물과 같다. 진흙이 가라앉고 나서야 비로소 전략의 우위가 드러난다"는 표현을 통해 변화무쌍한 상황에서의 현실적 어려움을 표현한 바 있다. 서로가 허둥대는 상황에서 결론은 각자가 가진 형(形), 즉 실력으로 판가름 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정부, 그리고 제주도에게 바라는 바는 이렇다. 기정상생의 지혜를 발휘해 달라는 것이다. 변화가 적은 평소에는 부지런히 실력을 닦고 기초 체력을 키워두고, 누구나 당황할 수밖에 없는 혼란기에 임기응변의 묘를 발휘해 달라는 것이다. 안정적인 경제구조와 산업구조, 즉 실력을 비축해 두면 혼란스러운 시기를 버텨 줄 중요한 체력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기에 닥쳐서는 모든 지혜를 모아 상황에 대처하는 운용의 묘와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국민도 정부가 당황해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레 실망하고 비판의 목소리만 높일 것은 아니다. 실력과 임기응변의 상생을 통해 침착하게 흙탕물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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