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욱 한의사·한의학 자문의원

요즘은 덜하지만, 예전에는 처음 와서 손부터 내미는 분들이 있었다. 맥을 봐달라는 말인데, 일반인들이 한의학을 볼 때 맥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보여주는 일면이다.

'맥脈을 본다' 함은 맥진脈診을 뜻한다. 한의학의 진단법은 4가지로 사진四診이라 한다.

신체를 눌러보는 절진切診(맥진 포함), 형상을 관찰하는 망진望診, 물어서 알아내는 문진問診, 냄새나 목소리를 들어서 아는 문진聞診이 있다. 이런 진단법들을 종합하여 병의 원인을 파악한 후 진료의 대강大綱을 세운다.

맥으로 알 수 있는 정보는 무척 많다. 병의 위치, 성질, 진행과정까지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암은 초기와 말기의 맥상이 완연히 다르다. 치료가 잘 되는지도 맥으로 알 수 있다. 침과 약을 쓰면 맥의 형상이 변하기 때문이다. 어느 장기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지도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하다. 예방의학으로서도 맥진이 꽤 유용하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자궁부위에 맥을 짚을 때 모래알갱이 혹은 개울물에 돌이 흐르는 느낌의 맥이 느껴지면 높은 확률로 자궁근종이 있거나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수술로 제거하거나 한약치료로 줄어들면 그 병맥의 기세가 약해지거나 사라지는 걸 볼 수 있다. 차후에 다시 같은 맥상이 나타나면 재발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한의학에서는 기氣의 변화가 생긴 연후에 형形의 변화가 온다고 보는데, 맥은 기의 변화에 따라 바로 바로 변하기 때문이다. 

다만, 맥진이 한의사의 필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의사마다 나름의 숙달된 진단법이 있기 때문이다. 망진으로 혹은 문진만으로도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한의원에 가더라도 맥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고 꼭 불평할 필요는 없다. 요리를 예로 들면,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최고인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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