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0주년 특별 대담 '미래학자'에 듣는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석좌교수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석좌교수

미래학, 미래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모습 만들고 이뤄내는 과정
코로나19 학습 효과 중요…뉴노멀 설정 신중·촘촘한 데이터 확보 집중
제주 기준 '균형 발전' 재설정 시급, "방법 찾는 힘 '사람'에서 찾아야"

제주 미래 전략에 언제까지 경쟁력 타령을 해야 하나.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는 어디까지 청사진이어야 할까. 4차산업 혁명과 지구온난화 같은 파고를 어떻게 넘느냐 고민하는 동안 코로나19로 전 세계 경제 뿐만 아니라 사람들 간의 인적 네트워크까지 붕괴 수준에 이르면서 새로운 비전 설정을 시급해졌다. 우리나라 벤처 1세대를 배출하며 정부 차원에서 처음 조직된 미래준비기구를 이끌었던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석좌교수에게 제주에 필요한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과 리부트(reboot·재시동) 방법을 들었다.

1. KAIST는 2013년부터 국가 미래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이자 국회의원이 이 보고서를 보면서 국가미래를 구상한다는 SNS상의 인증샷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 모두가 알고 싶은 것이 '미래에 과연 무엇이 어떻게 될까'하는 예측이 아닐까 싶다.

미래학에는 '미래를 가장 잘 예측하는 것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미래에 모두가 원하는 선호 시나리오만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래 연구를 할 때 성장 시나리오와 붕괴 시나리오를 모두 감안한다. 삶이 피폐해질 수 있는 부분은 가급적 속도를 늦추거나 차단할 수 있는방법을 찾고, 반대로 성장 가능한 부분에는 역량을 집중하는 것으로 실현 시기를 앞당길 수 있도록 전략을 짠다. 원하는 모습을 만들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실현하는 것이 미래학이다. 나침반을 찾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2. 코로나19 파장 생각보다 크다. 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미치는 강력한 파급력으로 인해 개인의 삶은 물론 국가의 통제가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 과제를 수정할 만큼 달라질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아직 코로나19 상황이 끝나지 않아 더 지켜봐야겠지만 큰 사건이나 위기를 겪으면서 동시간에 동일한 기억을 가지게 되는 데 따른 대응이 필요하다. 나이테가 만들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무의 나이를 아는 데이터이기도 하지만 뿌리를 내린 지형이나 활엽수인지 침엽수인지 하는 종류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가뭄이나 홍수 등을 겪으면 또 달라지고 비슷한 환경에 처하면 유사하게 대응하는 패턴을 보인다. 코로나19 회복 속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전 세계 정부는 물론이고 많은 미래학자들이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영향 여부를 예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첫 번째 요소가 과거로부터의 경험이라고 볼 때 대응 가능하다고 본다.

3.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데이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현 시점에서 제주가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느 부분을 살펴야하나.

코로나19로  '글로벌화(globalization)'가 무너졌다고 한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나오면 지금까지의 사회기반이나 생활양식이 순식간에 확 바뀌기 때문에 미래예측에서 과학기술의 변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처럼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들 중에서도 미래를 변화시키는 요소가 너무나 많고 다양하고 복잡하다. 변화를 가져오는 핵심 동인인 '드라이빙 포스(driving force)를 찾는 것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한국이라는 큰 틀 안에서 어쩔 수 없이 해결해야 하는 절대 과제로 고령화, 저출산, 환경, 에너지, 사회 갈등, 남북문제, 국제관계, 신성장동력, 과학기술 혁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로 배운 것 중에는 단순히 국내 상황만 제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주 확진자 수가 몇 명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전 세계적인 확진자 동향, 무엇보다 미국이나 중국의 상황을 살펴야 한다. 산업구조를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지 않나. 관광산업이 이런 경제 흐름에 민감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학습했다면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를 판단하는 냉철함이 필요하다.

4. 앞으로 제주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있는가.

제주가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익숙한 삶의 패턴이 달라지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 잘 대처할 수 없다는 생각에 가능한 변화를 삼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위기가 닥쳤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예상보다 빠르게 적응한다. 과거에는 두려웠던 일이지만 그것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점을 깨닫고 익숙해진다. 사회적 거리두기·온라인 개학 같은 임모빌리티(immobility·부동성) 사회를 경험했고, 언택트(untact·비접촉) 문화 정착 속도도 생각보다 빨랐다. 불과 한두달 전만해도 '가능하겠냐'는 물음표가 던져졌던 사안들이다.

앞으로 '균형 발전'은 낙후한 지역이나 산업을 키우는 형태가 아닐 수 있다. 인구구조 변화는 젊은 시장에서 중장년 시장으로,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구도심에서 신도심으로 일자리를 이동시킨다. 신기술은 서서히 오랫동안 일자리를 바꿀 것이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지방 협력이다. 자율주행자동차를 예로 들면, 현재는 한 쪽에서는 운전자 없이 IT 기기로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한 쪽에서는 자동차를 만드는 등 경쟁을 하는 구조다. 여러 센서가 작동해 실외 환경 변화를 극복하고 장애물을 피하면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경로를 파악해 이동하기 위해서는 동네가 아니라 전국 단위 도로 정보가 필요하다.  '친환경' 'ICT' 등 제주가 돋보일 수 있는 영역은 분명히 있다. 제주가 잘 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지역 경쟁력으로 옮길 수 있을지까지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탈지방, 탈지역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5. 넥슨·네이버·아이디스·네오위즈 등 유수의 벤처기업 1세대를 길러내셨다. 이들 기업을 통해 우리나라에 7000개가 넘는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사람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하셨다. 제주가 해야 할 것을 조언하신다면.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변화라는 것이 단번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변화에는 원리와 질서가 있다. 미래 노동시장의 변화도 원리와 질서 아래에서 일어난다. 미래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모든 변화에는 원리와 질서가 있다. 사람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처음 ICT산업과 연계한 벤처사업에 대한 구상을 할 때만 해도 몰래 했다. 야단 맞았던 일이다. '왜 그 때 못 했을까'했던 일들이다. 그 때 했다면 지금 더 다양한 변화가 이뤄질 수도 있었다.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비밀을 지켜준 것이 전부다.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제주도 미래의 제주, 나아가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칠 이슈를 발굴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기구를 설립하는 거창한 움직임이 아니라 '제주 미래'를 전제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야 한다. 생각하고 공부하는 모임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제주 미래는 제주가 만드는 것 아닌가. 미래 경쟁력은 통찰력의 수준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패턴화, 일반화, 추상화를 연습해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리더십)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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