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원 제주대 사학과 교수·논설위원

전염병의 시대는 항상 있어왔다. 인류를 위협했던 장구한 질병의 역사 속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전염병들이 몇 가지 있다. 흑사병(BlackDeath·페스트)을 비롯하여 한센병, 결핵, 발진티푸스, 매독, 콜레라, 장티푸스, 천연두 그리고 독감 등이 우리가 흔히 기억에 떠올리는 대표적인 전염병들이다. 

비록 최근 들어 새로운 치명적인 전염병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전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전통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전염병들은 계속되는 의료기술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강조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과거처럼 치명적인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17세기만 하더라도 이들 전염병은 인류에게 전례 없는 재앙이었으며 일단 감염되면 사망에 이르는 확률 또한 상당히 높았다.

역사상 알려진 가장 치명적이었던 전염병으로는 흑사병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의학사를 들여다보면, 인류는 역사상 3차례에 걸친 대규모의 대륙 간 전염을 경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역사기록에서 찾을 수 있는 첫 번째 흑사병의 대규모 유행은 AD 6세기경에 로마를 강타했다. 후세 학자들이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Plague of Justinian)라고 명명했던 이 악몽은 50년 이상 지속되며 도시인구의 40%를 소멸시켰었다고 전한다. 더할 나위 없이 두려웠던 이 전염병의 대유행은 이후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14세기에 이르러 유럽에서 또다시 폭발하였다. 감염되면 1일에서 3일내에 사망에 이르렀던 흑사병은 4~5년 밖에 되지 않은 짧은 기간 내에 대략 1700만에서 2800만 명에 이르는 생명을 앗아갔다. 이 수치는 당시 유럽인구의 4분의 1을 뛰어넘는 엄청난 숫자이기도 했다. 제3차 페스트 범유행은 중국 청나라 말기에 해당하는 1860년에 시작되었는데,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대륙을 전염시키고 인도에서만 1천만 명 이상을 사망시켰다.

필자의 연구대상 지역인 중국에서는 거의 매년 '대전염병'이 유행했다. 동한(東漢) 말년에 양쯔강 북쪽 지역에서 대규모 전염병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당시 저명한 시인이었던 왕찬(王粲)은 전염병을 피해 도망하던 중 "문을 나서면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백골이 평원을 덮고 있는 것뿐이며, 길에는 굶주린 여성과 포대에 쌓인 아기가 수풀 사이에 버려져 있다"고 한탄하였다.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있는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의 기록을 통해 질병과 관련된 데이터를 통계-분석하면 이 시기의 전염병 또한 매우 심각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명나라 후기 만력(萬曆) 연간에 중국의 화북지역에서 발생했던 전염병은 숭정(崇禎) 16년에 베이징으로 퍼져 나갔는데, 명사(明史)의 기록에 의하면 그 당시 "베이징의 방 10실 중 9실이 비었으며, 장정들이 모두 사라져 소진되어 염할 수 있는 사람조차 찾을 수 없었다."고 전하고 있다. 연구자들의 추측에 따르면, 명나라 말기인 만력과 숭정 연간에 화북지역에서 대규모로 확산되었던 두 차례의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인구는 천만 명을 넘어섰다. 명나라 말기를 휩쓸었던 전염병은 명조 멸망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전쟁이 빈번했던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군과 상군(湘軍)과 같은 군인들과 전쟁으로 발생한 대규모 난민과 유민의 인구 이동은 부유했던 강남지역의 생활환경을 악화시키고 다양한 재앙을 초래했다. 대표적인 재앙 중 하나는 바로 대규모 전염병의 발생이었다. 

인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염병과 투쟁하는 시대를 살아왔고, 지금 현재도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전염병과 마주하며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날이 오더라도 언젠가는 또 다른 전염병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전염병의 시대를 견뎌 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끊임없이 발달하고 있는 의료와 과학기술이 되겠지만, 그 내면에는 굴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와 희생이 저변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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